상장지수펀드(ETF)가 올해 국내 도입 10년을 맞는다. 여전히 생소한 투자자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ETF시장은 하루 평균 거래대금 기준 세계 5위, 종목 수 세계 9위로 급격히 성장했다. 시장 규모도 10년간 30배 가까이 커졌다. 이 같은 ETF의 성공스토리에는 한 사람의 10년에 걸친 노력과 우여곡절이 숨어 있다.
주인공은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이다. 배 본부장은 오로지 뚝심으로 ETF 불모지에 씨를 뿌리고 가꿨다.
2000년 삼성투신운용(현 삼성자산운용)에 근무하던 그는 ETF 도입을 위해 포기를 모르는 사람처럼 발품을 팔았다. 몇 번을 찾아가도 당시 금융감독원과 재정경제부 공무원들은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는 뻔한 답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다행히 먼저 ETF를 도입한 일본의 성공 사례가 소개되면서 금융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2002년 ETF 시장이 열렸다. 배 본부장은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쫓아 다니며 일일이 설득했죠, 관련법을 손질하고 ETF가 태어나기까지 꼬박 2년이나 걸렸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렇게 지칠 줄 모르고 매달린 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존 보글의 을 읽으며 성장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특정 지수나 자산가격에 연동되도록 설계한 펀드인 ETF는 거래소에 상장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 특히 수수료가 일반 펀드보다 4분의 1밖에 안돼 증권사나 자산운용회사가 아닌 투자자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도 매력이다.
다만 고수익을 좇는 투자자들을 유인하기엔 너무도 정직한 상품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섹시하지 않은 상품"이라고 표현했다. "시장이 10% 오르면 딱 10%만 수익을 올리는 구조인 탓에 모든 투자자들의 꿈인 시장보다 높은 수익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도입 첫해인 2002년 시장규모는 3,500억원에 불과했다.
초반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자 무언의 압박과 어려움도 많았다. ETF와 관련된 사소한 갈등으로 본부장에서 부장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사실상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인데…"라면서 더 구체적 이야기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피했다. 배 본부장은 좌천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주가연계펀드(ELF) 같은 대안을 만들며 4~5년간 꾸준히 ETF 상품 개발에 골몰했다.
그 동안 국내 증시가 개미 투자자만 손해 보는 구조로 바뀌어가면서 쓴 맛을 본 투자자들이 ETF에 시선을 돌리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폭락장에서는 주가가 떨어져도 돈을 벌 수 있는 ETF 상품(인버스)이 알려지면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2010년 6조원 규모이던 ETF시장은 1년 남짓한 기간에 10조원 규모로 커졌다.
덕분에 삼성자산운용은 ETF시장의 55%를 점유하며 강자로 우뚝 섰다. 거래량만 따지면 전체의 96%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선두주자다.
배 본부장은 "ETF 시장은 아직도 더 키워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경쟁사가 자문을 요청해오면 언제든 설명할 준비가 돼 있다"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접근하면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ETF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언론매체에서 ETF 이야기가 나오면 손자 손녀들에게 '할아버지가 만든 거야'하고 자랑하고 싶어요. 그때까지도 투자자들에겐 도움이 되는 상품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인터뷰를 맺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