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건 그가 되어 버리면 이 대통령이, 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 이라고 소리내어 말하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 인정해 버릴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을 너무나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그렇다고 딱히 누군가를 열심히 대통령이라고 불러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 이라고 부르기 싫었던 이유는 우리가 아예 최고경영자를 뽑고야 말았구나, 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긴 그를 뽑은 사람들 중에도 BBK가 그 사람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그가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우리를 이끌어 갈 존경할 만한 지도자라 믿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직성이나 도덕성같은 '비효율적'인 가치 같은 건 이제 됐으니까, 성과를 낼 수 있는 CEO를 다오! 그래서 우리가 기어코 CEO를 뽑고야 말았다는 그 모양새가 끔찍했다. 말이 좋게 표현해서 성과지 사실 그에게 우리가 주문했던 건 돈을 갖다 다오, 라는 말이었다. 당신은 돈 버는 법을 아는 것 같으니 당신을 뽑겠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건 '돈 버는 법'을 알아 보여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당선 후 그는 돈 버는 법을 알고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었다. 시장경제에서,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돈 버는 법을 안다는 것이란 법적으로 아슬아슬한 한도 전까지, 감옥에 가기 직전까지 다른 사람 주머니를 털어서 내 주머니를 채우는 방법인데, 우리는 순진하게 그가 다른 나라를 털어서 우리를 잘살게 해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전재산을 헌납한 재단 문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FTA같은 걸 보면 설마 우리나라를 털어서 자기가 잘살게 될 줄이야, 신자유주의의 기본은 개인이 모두 1인기업이 되는 것인데 이명박 기업의 CEO에게 우리나라 CEO를 기대한 사람이 바보다 싶다. CEO라는 것도 거칠게 말하면 밑의 놈들 쥐어짜서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 공으로 만들고 그것을 '고부가가치'라고 부른 다음 땀 흘린 사람들 대신 내가 많은 돈을 받는 일이 아닌가. 이 대통령은 자기가 잘 알고 있고 잘 하는 일을 했다. 아마 그는 죽을 때까지 성공적인 1인 기업가의 삶을 살지 않을까. 문제는 이 대통령 이후다.
이번에 일부러 개표 방송을 보지 않고 일찌감치 잠들었다가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고 뒷목을 잡았지만 어쩐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듯한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정국을 내다보는 신묘한 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기간에 한창 울려퍼지는 '이명박 심판'이라는 구호들이 워낙 스산하고 앙상해서였다. 그래서 이명박을 심판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강물처럼 정의가 흘러넘치는 올바른 사회가 구현되는가? '야권연대'라는 사람들도 이명박 심판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서는 뭐든 상관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 주는 내내 이길 것 같지가 않다, 하는 찜찜한 기분이 스물스물 다가왔다. 이명박 심판하고 나면 그 다음에 뭐? 사실은 이명박을 심판하고 나면 그 자리에 내가 들어앉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하는 강한 의지들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심정적으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이명박의 자리에 들어앉으면 기분이라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정권이 누가 됐든 그 정권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의 숙제는 현 정권을 지나가면서 현저히 낮아져 버린 도덕성이다. 지금 정권을 차지한 사람들의 도덕성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그런 것만 보다 보니 보는 사람들의 도덕성도 너무 낮아져 버린다. 나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치고 무감각해져 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무감각의 와중에도 차마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지만은 않다. 이명박도 있는데 박근혜 뽑는다고 별 일 나겠어? 하고 쿨하게 말하는 사람들 말대로 큰 일이야 안 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발음할 때 그 모양새와 상징성, 끔찍하지 않은가? 이게 큰 일이 아닌가?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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