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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작, 그곳] <18> 오정희 '옛우물' '비어 있는 들'의 의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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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작, 그곳] <18> 오정희 '옛우물' '비어 있는 들'의 의암호

입력
2012.04.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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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할 수 없는 목마름에 휘둘리던 시절… 젖먹이를 업고 호숫가를 헤맸다

사랑이란 본래 못 이룬 자들의 것이다. 그리움의 절정은 결핍에 기인하기에 모든 이루어진 사랑은 식상하고 종래엔 빛이 바랜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아 조급함에 달뜨는 찰나에 잠시 잠깐 황홀하게 스치는 감정이 아닐까. 하여 문학이란 이름으로 그 한 토막을 떼어내 가둬둘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 또는 '그녀'를 향한 잡히지 않는,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품격을 저버리지 않고 문학적 성과를 이끌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생생히 살아있는 오정희(64) 소설 속의 '그'는 출구를 찾지 못하는 열정의 현현이다. '그'의 실체를 찾아서, 혹은 현실에는 없는 그 실체를 마주하고 한번 더 배반당하기 위해서 작가가 살고 있는 춘천으로 차를 몰았다. 언어 파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요즘 미려한 그의 언어를 다시 들춰보게 되는 것도 춘천행에 한몫을 했다. 간결하면서도 밀도 높은 묘사로 단편에서 장편만큼의 성취를 이뤘다는 평을 듣는 그는 김동리 선생이 인정한 문장가이기도 하다.

아이를 들쳐업고 낯선 거리를 배회하던 때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을 가둬 둔 의암호에 닿은 작가는 "참 오랜만"이라고 했다. 목에 두른 스카프가 볕을 받아 자르르하게 빛나는 호수 쪽으로 나부끼자 "누가 그러더라고. 날리는 맛에 머플러 하는 거라고" 하며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그저 흐르다 갇힌 물이건만 작가가 사는 곳의 강물은 마치 수면 아래 무언가 감춰둔 듯 특별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사진까지 찍는 인터뷰가 참 오랜만이라는 작가는 뭐에 홀려 약속을 했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의암호에 밭게 붙어 있는 간이매점의 핑크색 의자에 앉아 화창한 풍경을 내다보며 곧 오래 전 그때를 떠올렸다.

서울 마포의 당인리 발전소 부근을 생각하며 쓴 '불의강'(1977) 이후로 '파로호' '구부러진 길 저쪽' 등 오정희는 여러 작품에 강을 끌어다 썼다. 교수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이주한 1978년 이후 소설에는 특히 춘천을 떠올리게 하는 강과 안개가 원경으로 흐릿하게 자리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이 마음은 적막강산인 채로 설명할 수 없는 목마름과 열정에 휘둘리는 젊은 어미였던 시절" 자주 아이를 들쳐 업고 낯선 거리를 배회하곤 했는데 의암호 역시 그런 곳들 중 하나였다. 그때의 체험으로 '비어 있는 들'(1979)과 '옛우물'(1996)이 나왔다. '비어 있는 들'에서는 욕망과 저 건너편의 유혹에 맞서는 반대급부적 이끌림의 어떤 경계로, '옛우물'에서는 '사랑하는 '그'가 내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강이며 그의 죽음 후에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장소로 의암호는 소설 속에 들어 앉았다.

'비어 있는 들' '옛우물' 속 그리운 그

'비어 있는 들'의 나는 이른 새벽 잠이 덜 깨 방향 지시 계기가 고장난 로봇처럼 비틀대는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낚시여행에 따라 나선다. '하늘은 짙은 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앞으로 일어날 비극적 사건 혹은 주인공의 어둡고 음습한 열정 따위를 암시하는 무대의 배면처럼 비현실적인 색조로 새파랬'고, 나는 초조하고 절박하게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린다. '한번도 이곳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 온 적이 없었'으나 '종종 예감과 기대로 설레며 새벽을 맞고 밤을 보내게 하는' 그를 절박하게 기다리며 남편에게 "몇 시예요?" 되풀이해 묻는다.

'기차는 이십 분 연착인 것이다. 그 이십 분이 내게 구원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이십 분 간의 유예를 갖는 것이다. 최소한 이십 분 가량은 헛되이 낯선 거리를 기웃거리며 방황하지 않을 유예. 열린 창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선풍기는 뻑뻑히 목을 꺾으며 힘들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끈끈한 바람에 함께 허덕이며 그는 아마 이쪽을 보고 있을까. 한유하게 낚싯대를 드리운 우리를 볼까. 아, 이십분, 두시간, 이틀이면 어떠랴, 나는 해(年)를 두고 그를 기다려왔던 것을. 나는 줄곧 그를 기다려왔다. 그 기다림은 하도 절박하면서도 만성적인 것이어서 나는 오히려 그것이 생리적, 원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비어 있는 들')

작품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하도 생생해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그'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사실 '비어 있는 들'은 어느 여름날 새벽 남편과 어린 아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낚시터를 찾았던 체험으로 쓴 소설"로 지명도 상황도 허구다. 하지만 배를 타고 지나던 길, 흙을 허물어뜨리는 물살에 작은 섬의 나무뿌리들이 불안하게 드러나 보이던 것, 포플러 숲을 뒤흔들며 날아오르는 새떼들을 보며 소설적 장면을 떠올렸다. "젊은 날 하염없이 막막했던 그때 그 시절의 내가 만져지는 것 같다"는 말이 아니어도 낯선 곳으로 이주해 느끼는 불안함과 막막함과 소설가로서의 성취를 뒤로하고 바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일을 떠맡아야 했던 데서 오는 무력감이 전해지는 것 같다.

십수년 후 중년이 된 작가가 발표한 '옛우물'에서 그 초조는 관조로 가라앉았지만 더 이상 젊지 않은 여자의 사랑이라도 팔팔하게 살아 있다. 외연을 확대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흔들림에 천착한 작가는 비슷한 주제를 변주했지만 녹슬지 않고, 공처럼 튀어 오르는 의외성으로 늘 독자를 긴장시킨다.

'그 여름, 나를 찾아온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허둥대는 어미의 기색을 본능적으로 느낀 아이는 필사적으로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았다. 진저리를 치며 물어뜯었다. 이가 돋기 시작한 아이의 무는 힘은 무서웠다. 아앗,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불에 덴 듯 울어대는 아이를 떼어놓자 젖꼭지가 잘려나간 듯한 아픔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다. 아이의 입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브래지어 속에 거즈를 넣어 흐르는 피를 막으며 나는 절박한 불안에 우는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고 그에게 달려 나갔다.(…) 여름 한낮, 천 년의 세월로 퇴락한 절 마당에는 영산홍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영산홍 붉은빛은 지옥까지 가 닿는다고. 꽃빛에 눈부셔 하며 그가 말했다. 지옥까지 가겠노라고, 빛과 소리와 어둠의 끝까지 가보겠노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을 것이다.'('옛우물')

'한 번 생긴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다른 소설 속 구절처럼 생래적으로 날카로운 감각은 결코 무뎌지지 않았다. 다만 젊은 시절 불륜이라는 이름이 붙을 것이 두려워 회피했던 만남이, 세월이 흘러서는 만남 그 이후로 나아간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청평사로 잠시 도피한 남녀가 행락지에서 부모를 잃어버려 섧게 우는 아이를 목도하고는 이내 식어 버리고 말지만.

'강물이 그렇게 더럽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짙은 황혼이 아니었다면, 황혼과 어둠 속으로 조그맣게 지워져간 그 두아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토록 극력 감추고 있던 욕망의 본질을, 허위를 단번에 꿰뚫어 보는 일은 없었으리라. 지옥까지 가겠노라는 행복감의 또 다른 얼굴을 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옛우물')

신문에서 그의 부고(訃告)를 접하고도 '존재하던 한 사람이, 그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는 기미는 어디에도 없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예사롭고 평온한 저녁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통찰에 이르지만 '그가 죽고 내 안의 무엇인가가 죽었다'고 중년의 여자는 단언한다.

끊임없이 변주되지만 한번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에 대해 묻자 작가는 당연하다는 듯 "사람이든 어떤 이상이든 또는 알 수 없는 갈망이든, 누구나 마음 안에 근원적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허기와 목마름 인간의 숙명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담는 도구라지만 소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 마련. 로맨스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상보다 더 추상적인 '그'의 실체 앞에서 조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작가 오정희, 섬뜩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욕망하고, 모성을 거부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이곳 안에서 또 있을 다른 이곳을 꿈꾸는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평생 써왔죠." 허튼 구석 없이 단아한 모습 어디에서 그런 뜨거운 열정과 불온한 사고가 나오는 것일까 관찰해도 결국 보이지 않는 불덩어리를 숨기고 있다는 추측밖에는 찾을 길이 없다. 때로는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가냘프기까지 한 문체 한켠, 냉담한 응시를 목도한 이들은 오정희의 소설에서 '섬뜩함'(평론가 김현)을 읽는다고까지 했다.

"인생에 대한 기대가 별반 없었다"는 작가의 말과 반대로 오정희는 한 평생 삶에 착실했다. 장성한 아들 딸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부터 따로 살았지만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살뜰히 챙겼고 강원대 총장을 역임한 남편 박용수씨의 뒷바라지와 살림으로 큰 여유가 없었다. 그 틈에 소설을 썼고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방기하고는 못 견디는 구세대이기도 한 까닭에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다. 전후 세대로 문학하는 여성의 삶은 불행하니 섣부르게 투신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고 자란 오정희는 '불행이여 오라. 삶은 어찌되어도 좋다. 나는 오직 작가가 되고 싶다'고 각오할 정도로 치열했으나, 그렇게 원하던 '나만의 방'도 마흔여덟이 되어서야 가질 수 있었다. "한 순간도 소설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지만 글쓰기에 대한 근원적 갈망을 채우기엔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작가는 몇 해 전 자신의 연보를 정리하면서 "작가로서 직무유기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문득 안주와 벗어남이 길항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남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다. 소설 쓰는 아내를 둔 남편은 이야기 속에서 생경한 배우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분노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은 터다. "결혼 전에 내 소설을 읽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했어요. 그리고는 얘기한 적 없으니 외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담담하게 말하는 작가와 달리 남편의 속내는 달랐을 것 같으나, <오정희 깊이 읽기> 에 실린 아들 박정호씨의 글에 보면 남편은 '작가로서의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그 뜻을 따랐다. 신혼여행 빼곤 2005년 실크로드에 여행한 것이 처음일 만큼 바쁜 남편이지만 유명작가인 아내의 작품을 한편도 안 읽었을 리 만무하다. 어쨌든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것으로 대단한 외조를 한 셈이다.

작가는 잘 지은 건축물처럼 완벽한 구조에 적확한 단어만 쓰는 문장가라는 찬사에 손사래를 쳤다. 해체적인 문법과 문장을 쓰는 요즘 작가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물었지만 끝내 그 답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의사전달이 아니라 문장이 사유가 되고 메시지가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문장수업 역시 아름다운 한국 단편소설들을 읽으면서 의식하지 않는 사이 체취처럼 배어버린 면도 있다며, 황순원의 '희게 떠보였다'는 표현을 예로 들었다. 흑백이 선명하게 배치된 시각적 이미지와 울림으로 각인되어 이후 종종 차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문단의 평가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과작(寡作)한 것에 대해 "게을렀다" "두려웠다" 고 고백하지만 문학에 대한 엄격함으로도 읽힌다. 늘 스스로를 다그치는 스타일이라 "신바람이 나서 쓰는 게 아니라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고도 했다. "실패도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것에 소심했던 것 같다"는 그는 '옛우물'에 비치는 여자의 일생을 확장한 장편을 올해 말께 완성할 계획이다.

오정희는 치밀한 작가다. 최소한의 문장으로 최대한을 표현하는 단편은 몇번이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고개를 드는 오묘함으로 빛난다. 장편이라고 다를 리 없다. 그는 2008년 김유정 문학촌 인근 지금의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살림집 옆에 지은 서재에서 중편으로도 분류되는 <새> 와 장편 <목련꽃 피는 날> 에 이어 추가할 긴 이야기를 쓰고 있다.

■ 후배작가들을 사로잡았던 오정희

文靑 매혹시킨 지향점… 신경숙·공지영·은희경… "무작정 춘천행 기차에"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전경린, 하성란, 조경란 등 내로라하는 여성작가들의 초기작은 선배 작가 오정희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 대중에게는 박경리나 박완서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단에서 오정희의 위치는 각별하다. 특히 거대담론에 압도됐던 시절을 지나 개인의 실존적 욕망으로 관심이 넘어가던 1990년대, 문학을 하는 이 대부분이 오정희를 사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론가 이광호는 '오정희에 사로잡힌 적이 없이 문학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가'라고 물으며 '오정희라는 텍스트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수원(水源)'과 같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나의 20대의 얼마간은 오정희로 인해 유지되었다고 고백하려다가 참는다. 어쩌면 그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글쓰기에 꿈을 둔 나와 비슷한 연배들 중의 얼마간은 다들 그랬을 것이므로… 강의실을 떠나 도서관의 문학실에서 전갈같은 한 때를 보낼 때도 옆엔 늘 오정희가 있었다"는 신경숙(1995년 '작가세계'), 습작하던 시절 오정희를 만나야겠다고 무작정 춘천행 기차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사로잡혔었다는 공지영 등 후배들의 고백이 잇따랐다. 오씨는 그들의 과거 발언이 회자되는 게 미안스럽다며 겸연쩍어했지만, 어린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은희경의 장편 '새의 선물'(1996), 신경숙의 단편 '밤고기'(1987) 등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구체적인 유사성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몇몇 작가들은 평범한 듯 날카로운 통찰력과 범상치 않은 오정희의 필력을 닮기 위해 필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문학행사 외에 특별히 교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많은 작품을 내놓지도 않았지만 오정희가 문학세계에 구축해 놓은 성은 견고하고 아름답다. 때문에 아직까지 문청(文靑)들을 매혹시키는 어떤 지향점으로서 우뚝하다.

춘천=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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