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배우가 아니다. 그렇다고 연달아 화제작을 선보인 이름 있는 연출가나 극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공연 좀 본다 하는 마니아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던 2004년 뮤지컬 '쑥부쟁이'로 무대미술에 발을 들여놓은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35)씨는 연초부터 '878미터의 봄''목란언니' 등 신작 연극에 연이어 참여했다. 현재 공연이 한창인 뮤지컬 '모비딕'의 무대도 그의 손을 거쳤다.
향후 일정도 빡빡하다. 명동예술극장의 신작 '헤다 가블러'(5월)와 두산아트센터의 '뻘'(6월), 국립극단의 '길 위의 길'(9월), LG아트센터가 제작하는 연출가 고선웅씨의 신작 '리어왕'(12월) 등 올해만 10편에 달하는 연극과 뮤지컬의 무대를 책임지게 됐다.
"제가 그간 공연계에 없던 캐릭터라 신선하게 보시나 봐요. 공연은 공동 작업인데 전 작가주의라고나 할까, 저 스스로를 좀 더 드러내고 싶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학창시절의 선배나 선생님들은 제가 공연계에서 일하는 걸 놀라워하세요."
15일 뮤지컬 '모비딕'이 공연되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무대'보다 '미술'에 방점을 찍었다. "무대미술이란 배경을 설명하고 장면을 바꾸는 기술이 아닌 공연이라는 장르에서 미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저는 사실 장면 전환의 기술적인 부분은 아직 공부가 부족해요. 하지만 일단 미술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한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무대로도 가져와야 공연도 발전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늘 시각적, 미학적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서양화가를 꿈꿨던 그는 예술고에 진학하면서 디자인의 세계에 눈 떴고 한예종의 독특한 입시 제도에 매력을 느껴 연극원 무대미술과에 진학했다. "공연에 대한 특별한 관심보다는 단지 미술원이 개원하지 않았던 시기에 입학한 까닭"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력 때문인지 그는 기존 무대 디자이너들의 전형적인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다른 디자이너 선생님들은 늘 정밀한 도면과 미니어처로 무대의 밑그림을 설명하지만 저는 사진을 오려 붙인 콜라주로 도면을 대신하기도 해요. 또 가짜 같은 느낌이 싫어서 직접 현장에서 구한 물건을 소품으로 쓰기도 하죠."
그는 "100년 세월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발품을 들여 버려진 나무를 주워 오기도 하고 "진짜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책이나 배우들의 물건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면 쉽지 않으니까요."
그는 최근 연극과 뮤지컬계의 주요 시상식에서 잇따라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두산아트센터는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그를 지원하고 있다. 한때는 무대미술을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느꼈던 그도 이제 무대미술가로서 책임을 느껴야 할 자리에 온 것이다.
"아직은 무대 디자이너로 불리지만 앞으로는 무대미술가로 불리고 싶어요. 두산아트센터가 저를 지원하는 것도 '공연쟁이'가 아닌 예술가로서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뜻 아니겠어요? 저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개인 전시회 같은 개별 작업으로 채워야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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