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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칼럼] 예술에 대한 지원,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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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칼럼] 예술에 대한 지원, 어찌해야 할까

입력
2012.04.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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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러쉬'란 말이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이 쓴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라는 책에 나오는 단어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지칠 줄 모르고 예술계로 뛰어드는 현상이 마치 금광을 찾아 몰려드는 '골드러쉬'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만든 말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왜 가난한 것일까? 그것은 예술계가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토마토를 100박스 담은 사람은 99박스를 담은 사람보다 1%의 돈을 더 많이 받지만, 육상선수 A가 B보다 1% 빠르면 A는 1%만큼 상금을 받는 게 아니라 모든 상금을 혼자 독차지한다. 이러한 승자독식 현상과 함께 예술가들이 가난한 이유로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선입견, 비금전적인 보상 추구, 위험감수 성향, 자만심과 자기기만 등을 들고 있다. 또 예술가 공급과잉 현상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한다. 승자독식이 가져오는 장밋빛 환상에 이끌려서 젊은 예술가들이 과잉공급되고, 그 결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거 배출된다. 예술지망생들은 자신이 앞으로 돈을 얼마나 벌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화려한 행운만을 믿으며 발을 디디게 된다. 이러한 예술지망생들을 부추기는 예술학교의 설립과 국가의 지원은 예술가 과잉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메세나라는 부호가 있었다. 그는 막대한 재산으로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오늘날 예술을 후원하는 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이러한 메세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예술가들을 후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후원의 혜택은 극소수의 선택 받은 예술가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계의 승자독식을 심화시킨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더 이상 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예술가들의 경쟁을 왜곡시키며 예술계의 빈곤현상을 심화시킨다.

그렇다면 정부의 지원을 중단해야 할까? 과연 예술이 국민의 세금인 국고를 통해 지원해야 할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또 그 지원은 과연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많은 논란거리를 담고 있다.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의 견해도 다르고, 예술애호가와 예술에 관심이 없는 대중들의 견해가 다르고, 정부의 정책도 미국의 정책과 유럽의 정책과 우리나라의 정책이 서로 너무 다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려왔다. 그러나 MB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지원이 줄어들거나 중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4대강 사업 때문에 문화쪽 예산은 대폭 줄었다.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반갑지 않은 흐름이다.

이 흐름에 대해 예술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예술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예술가가 시장에 적응해 자신의 작품들을 다변화해서 수입의 구조를 다양화시킬 수 있다면,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술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거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은 무책임하고 희망은 일방적이다. 시장에 맡겨 살아남는 예술도 있지만 살아남지 못할 예술도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에 맡겨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시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 수명이 다한 예술로 취급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 중에는 우리가 꼭 간직해야할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지닌 것들도 많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소수민족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데, 사용자가 없거나 줄어들고 있는 언어는 사라지게 내버려둬야 할까? 자, 예술이 스스로 밥 먹고 살 게 시장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과, 예술을 후원하고 지원해 예술을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 어느 쪽이 옳을까? 정답은 없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나 기업이나 정부나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그 추가 좌우로 이동할 뿐이다.

김명곤 동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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