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수업이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과 전쟁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하는 말이 나온 지가 10년쯤 되었으니 꽤 오래 전부터일 것이다. 그래도 어느덧 적응이 되어선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수업이 힘들다고 심하게 푸념을 하는 교사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10년부터 서울의 일반계고에서는 교사들의 푸념 소리가 부쩍 늘기 시작했다. 그 해엔 주로 1학년 담당 교사들의 푸념이 많아졌다. 2~3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그게 뭐 어제오늘의 일이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학년 담당 교사들은 '수업 안 해본 사람은 몰라'하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2학년 담당 교사들의 푸념도 상당히 많아졌다. 그리고 올해, 상황은 뻔하다.
지지난 해, 서울의 일반계고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학급의 성적분포도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때문이다.
자사고는 2010년에 처음 생겨 현재 전국에 50개가 존재한다. 그 중 26개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의 자사고에는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50% 이내의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다. 그 중 자사고에 실제로 지망하는 학생은 주로 중상위권 학생이다. 최상위권 학생들 중 상당수는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지원한다.
자사고로 중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바람에 일반계고에서는 중상위권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업의 기준으로 삼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수업참여도가 상당히 높은 편인 학생들이다.
현저히 얇아진 중상위권 학생층. 더 두꺼워진 하위권 학생층. 여전히 존재하는 최상위권 학생층.(최상위권 학생들은 주로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후 들어온다.) 일반고의 성적분포도는 이렇게 수업의 진행 자체가 너무도 어려운 상태로 변해버렸다. 수업하는 교사로서는 이보다 더 나쁜 성적분포도를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일반계고의 수업붕괴 현상은 점점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문제가 수업붕괴로만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일반고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교우관계가 이전에 비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학급의 교우관계에서 허리 역할을 해주던 학생층이 현저히 얇아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로 인해 학교폭력마저 증가했을지 모른다. 이것은 사회의 중산층이 붕괴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학교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산층이 튼튼하지 않은 사회가 자신을 건강하고 평화롭게 유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학교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사고 이전에도 일반계고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 중 상당 부분은 고교평준화제도로부터 발생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자사고를 만들어 평준화제도를 해체하는 것은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충분하다. 문제가 있다면 평준화제도 안에서 개선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평준화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3월 28일 서울시교육청은 고교선택제의 폐지를 1년 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이러저러한 분석과 의견들이 언론에 언급되었다. 그 중 나의 특별한 주목을 끈 것은 이 말이었다.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그대로 둔 채 후기고 선택권을 일부 조정하거나 폐지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무거운 바벨을 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역도 선수에게 무거운 쇳덩어리 몇 개를 더 올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자사고의 등장이 서울의 일반계고에 미친 영향이 정확히 그것과 같다.
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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