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동생이 걱정돼 같은 부대에 입대한 형. 전투 중 앞서 간 형을 평생 그리워한 동생. 이 형제가 61년만에 유골이 되어 다시 만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사연이다.
22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70여명의 캐나다 노병들과 함께 한국을 찾는 데비 낸시 히어세이(52)에게 이번 방한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는 씻김굿과 같은 행사다. 그는 아들 솔로몬(17)과 함께 지난해 폐암으로 별세한 아버지 아치볼드 허시(1929~2011)의 유골을 들고 온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부산 유엔군묘지에 묻힌 큰아버지 조셉 허시(1928~1951) 곁에 묻기 위해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이그네이스라는 작은 마을 중산층 가족의 7남매 중 장남 조셉과 2남 아치볼드 사이가 각별했다. 한 살 터울로 어렸을 때부터 죽이 잘 맞는 형제였다.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그 해 9월 동생 아치볼드가 캐나다군에 자원입대하면서 형제는 헤어졌다. 이역만리 전투에 나간 동생이 걱정됐던 형 조셉은 결국 이듬해 1월 동생 아치가 배속된 프린세스 패트리셔 연대로 입대했다.
형이 같은 부대에 있는 줄도 몰랐던 아치볼드가 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51년 10월의 야간전투 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치, 너의 형이 여기 있다"는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렸지만 형은 이미 왼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절명한 상태였다. 아치볼드는 형을 부산의 유엔군묘지에 묻은 뒤 형의 유품을 품고 캐나다로 돌아왔다. 형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떨칠 수 없었다. 형이 묻힌 한국을 다시 찾고 싶었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았다. 아치볼드는 지난해 6월 숨을 거두며 딸 데비에게 "내가 죽으면 꼭 형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 손에 왜 늘 푸른 멍이 들어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꿈에서도 큰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침대를 적군인 양 내리쳤던 것입니다."
25일 부산 유엔군묘지에서 합장 안장식을 끝낸 뒤 국가보훈처는 데비에게 감사패를 증정할 계획이다. 데비는 최근 보훈처에 보낸 이메일에서 "아버지는 생전에 형이 살아계셨다면 너를 친딸처럼 예뻐했을 것이라고 말씀했다"며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게 돼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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