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 퇴임한 조대현 전 재판관의 후임 자리를 채우지 못한 채 10개월째 파행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재판관 공석 문제는 단시간 내에 봉합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통합민주당이 18대 국회에서 부결된 조용환(52ㆍ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의 인준을 19대 국회에서도 계속 고집할 경우 또 다시 여야 대립으로 후임 재판관 인선이 표류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재판관 9인 체제'가 무너진 위헌적 상황이 올해 안에 치유되기 힘들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헌재는 이강국 소장이 국회의장 앞으로 공개서한을 전달하면서까지 재판관 공석사태 해소를 강력 주문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 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관 사이에 견해가 대립할 때에는 한 표가 중요한데 그런 경우 새 재판관이 들어오면 의견을 들어보자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8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된 지난해 7월 이후 최근까지 헌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9건의 주요 선고 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61%에 달하는 128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각하, 기각 포함) 결정이 내려졌다. 4명 이상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재판관 사이에 의견 대립이 팽팽했던 사건은 고작 7건에 불과했다. 재판관 사이에 견해가 대립되는 사건의 경우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이 소장의 발언이 엄살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헌재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선고가 되지 않고 있는 미제 사건은 총 902건. 이중에는 간통, 낙태, 사학법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도 포함돼 있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집시법 10조) 역시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기간인 1년이 넘도록 법이 개정되지 않고 있어 헌재의 위헌 여부 판단이 시급히 요구되는 데도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훈시 규정에 사건이 접수되면 가급적 18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강제 조항은 아니라지만 사건 당사자 입장을 생각할 때 정치권이 각성해 빨리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한 달 반 남은 18대 국회에서 새로운 재판관 후보자를 추천해 인준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19대 국회가 개회(5월30일 예정)하면 최우선적으로 헌재 재판관 인준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도 여대야소 국면이 유지됨으로써 진보적 성향인 조용환 후보자의 천안함 발언으로 촉발된 여야의 이념적 대립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18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19대 국회 개원마저 1, 2개월 연기될 경우 오는 9월 목영준 재판관 등 4명의 재판관 퇴임과 맞물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19대 국회에서 재판관 인선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해 5명이 동시에 청문회를 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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