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을 정점으로 북한이 공들여 준비한 축제가 막을 내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11일 당 대표자회와 13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측근을 기용하며 새로운 권력지형도를 완성했고, 15일 대중 앞에서 장시간 연설하는 깜짝쇼도 연출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신형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공개해 '군사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일련의 정치 일정은 예정된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김 1비서는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향후 북한 체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공개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김 1비서는 15일 김일성 광장에서 수만 명의 군중과 이를 실황 중계하는 전세계 방송매체를 상대로 20여분 동안 연설을 했다. 대중연설 데뷔무대치고는 꽤 긴 시간이다. 또 13일 장거리 로켓 발사가 실패로 끝나자 4시간 만에 시인했다. 그는 15일 연설에서 원고를 그대로 읽었지만 시종일관 목소리를 내리깔며 좌중을 압도하려 애썼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6일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존경심을 직접 이끌어내는 밑으로부터의 정치를 추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 1비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것 같다"며 "앞으로 한층 전향적이고 대외지향적인 개혁ㆍ개방 조치를 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적잖은 한계도 드러냈다. 김 1비서는 15일 열병식에서 김일성 주석의 외모와 행동을 따라 하는 데 급급하는 등 과거 김 주석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주력했다. 기대했던 2012년 강성국가 진입 선포도 진행중인 과제로 미뤘다. 기존 권력기관의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고 직책인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잇따라 공석으로 남긴 것은 향후 김 1비서의 권한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북관계 전문가는 "김 1비서는 아직 노회한 엘리트 집단의 치마폭에 갇혀있는 모습"이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주어진 여건 사이에서 상당 기간 줄타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1비서의 당면 과제는 식량난이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로켓 발사로 북미 2ㆍ29 합의를 깬 마당에 당분간 다시 손을 벌리기는 쉽지 않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압박도 부담이다.
다만 북한이 핵실험이나 추가적인 로켓 발사 등 강경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미국 등과의 대화 추진가능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김 1비서가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이르면 이달 안에 중국을 방문하는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한 줄타기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주목된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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