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을 봤다. 기대 없이 보면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을 거라는 주변의 엇비슷한 권유가 있었다. 다들 이부자리 챙기기 바쁠 자정 무렵,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가 단지를 돌아 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장마철 여름밤이거나 눈 오는 겨울밤이면 상상할 수 없을 이 즉흥은 본디 봄밤만의 홀림일 터, 극장은 예상대로 텅 빈 채였고 내 앞줄과 뒷줄로 야구 모자를 꾹 눌러쓴 남남 커플이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었다. 내 세대인 95학번 안팎을 시대적 배경으로 깔았으나 전 세대의 감성을 투과할 수 있는 첫사랑을 주제로 한 까닭에 영화보다 배우보다 내가 남을 영화가 아닐까 했다.
첫사랑, 그 희미한 옛 그림자를 좇느라 시작부터 기억의 퍼즐 맞추기에 나선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땐 최선이라는 판단 아래 뱉은 말과 저지른 행동이었으련만 우리들의 처음은, 그 사랑은 왜 늘 안녕? 과 안녕! 을 헷갈려 하던가.
그렇게 꽈배기처럼 어긋난 인연을 연인으로 망각 속에 체념 속에 처음인 듯 서로를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 아름다운 착각이 오늘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노니… 그래 애절한 첫사랑과 절절한 로맨스 좋은 건 알겠다만 영화 제목처럼 건축학에 더 관심이 가는 나를 어쩌누. 사람에도 사랑에도 고개 절래절래, 그저 믿을 거라곤 땅이라며 평당 계산에 바쁜 속물근성의 나를 어찌할꼬.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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