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 행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공개와 함께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대중연설이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직접 연설할 정도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즐겼다. 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 연설 기록은 1992년 4월 인민군 창건 60주년 행사 말미에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이 있으라"고 말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김 위원장은 뒤에서 움직이는 은둔형 지도자였다.
따라서 북한이 이날 20여분 동안 진행된 김 1비서의 연설을 조선중앙TV 등 방송매체를 통해 중계한 것은 김 주석의 통치 스타일을 모방해 주민들과의 대면 접촉을 늘려가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김 주석의 이미지를 연출해 주민들의 향수와 충성심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실제 김 1비서는 2010년 9월 제3자 당 대표자회에서 공식 등장한 이후 검은색 인민복을 즐겨 입고, 헤어스타일을 짧게 올리는 등 김 주석과 겹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군 부대를 방문해 병사들과 거침없는 스킨십을 선보인 것도 '김일성 따라 하기'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김일성식 연설 정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연설에서 김 1비서의 목소리도 김 주석의 판박이였다. 의도적으로 무겁게 톤을 낮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김 1비서는 대중 앞에 처음 나선 것이 어색하고 긴장되는 듯 단상에 서서 원고를 읽는 도중 여러 차례 몸을 비비 꼬거나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였다.
연설 중간중간 열렬히 박수를 치던 수만 명의 주민들은 김 1비서가 연설을 마치면서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고 선창하자 일제히 두 손을 들고 "만세"라고 외쳤다.
연설에 이은 열병식 장면도 김 주석을 연상케 했다. 북한의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기마종대의 기수들은 흰색의 망토를 걸쳤고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한 군 지도부와 고위 장성들도 흰색 군복을 입고 열병식에 참석했다.
흰색 군복은 김 위원장 시절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김 주석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직후 평양에서 열린 전승 열병식에 흰색 원수복을 입고 나타난 적이 있다. 당시 최용건, 남일 등 북한의 장군들도 모두 흰색 군복 차림이었다. 김 1비서는 열병식을 지켜보던 도중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군 수뇌부와 웃으며 얘기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이날 김일성 광장에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의 대형 사진을 전시하고 상공 곳곳에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등의 구호가 적힌 대형 애드벌룬을 설치했다. 저녁에는 평양 주체사상탑 앞에서 김 1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생일 축하 불꽃놀이를 벌였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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