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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 <8> 루크 리 버클리대 교수 → 차국린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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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 <8> 루크 리 버클리대 교수 → 차국린 서울대 교수

입력
2012.04.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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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람 포스텍 신소재공학부 교수가 추천한 '늦깎이 과학자' 루크 리(한국명 이평세) 미국 버클리대 생명공학과 교수가 이번엔 모험 과학자라며 차국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소개한다.

그는 내 '보스'였다. 1990년대 초반 차국린(53)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초전도기기 개발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나를 포함한 팀원 4명을 이끄는 팀장이었다. 내가 1996년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 우린 같이 일을 했다. 이후 그도 1998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떠났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초전도체 개발 붐이 한창이었다. 초전도체는 영하 269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다. 특히 1987년 상온에 가까운 영하 196도에서 초전도 성질을 보이는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된 이후 그 열기는 1990년대 후반 한풀 꺾이기 전까지 이어졌다. 고온초전도체는 초전도체보다 제작 비용이 적게 들고, 활용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눈을 깜빡일 때 뇌에서 전류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흐르는지 측정할 수 있는 초전도체 센서를 개발하는 등 적은 인원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 학계에서도 꽤 주목 받았다.

그는 내게 가능성을 내다봐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한번은 연구소에서 개발한 초전도체 제작 기술 중 무엇을 상용화할지 논의가 벌어졌다. 개발팀에서는 이미 상용화에 근접한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차 교수는 아직까지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고 있는 기술에 기회를 주자고 했다.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섰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그때 차 교수는 아이디어 수준에 있는 그 기술을 좀 더 개발해본 다음에 최종 결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회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차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적은 돈을 투자했는데도 개발팀에서 미는 기술과 비슷한 효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차 교수는 모험심도 강했다. 아니, 반골기질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남의 것과 비슷한 연구는 하지 않았고, 남이 해보지 않은 주제면 일단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물론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연구하기 힘들다. 이미 다른 사람이 낸 길을 2등으로 쫓아가면 논문도 쓰기 쉽고, 연구비도 많이 따올 수 있다. 반면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실패한다고 여겨 투자를 받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2등으로 걸으면 뒤처지진 않을지 몰라도 앞서긴 어렵다고 차 교수는 항상 말했다. 난 그 점이 좋았다. 30대에 만난 우린 어느새 흰 머리카락을 세는 50대가 됐지만 그 말은 여전히 내게 울림을 준다.

정리=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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