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고 칠이 벗겨진 전등 갓에 곡선의 우아한 플로어 스탠드 다리를 붙였다. 탱크를 생산한 회사의 묵직하고 견고한 조명엔 서랍도 달아 툴박스로 활용하게 했다. 어디든 끌어와 사용할 수 있게 자유자재로 구부려지고 움직여지는 다리라든가, 전등 갓을 움직여 위 아래, 옆을 비출 수 있게 한 조명이 유용해 보인다.
국내의 대표적인 산업용 빈티지 조명 컬렉터이자 조명 디자이너인 배상필씨의 디자인은 한결같이 이런 식이다. 그가 빈티지 조명을 활용해 새로운 조명으로 재탄생시키거나 처음부터 자체 제작한 조명이 서울 소격동 금호미술관(5월 6일까지)과 청담동 갤러리 K(4월 27일까지)에서 전시 중이다. 전자는 그룹전 '디자인, 콜렉션, 플리마켓'이며, 후자는 개인전 '평행선'(equilibrium)이다. 배씨는 양쪽 전시에 20여 점씩의 조명을 출품했다.
"10대 때부터 형을 따라 벼룩시장, 옥션 등을 다니며 컬렉션에 입문했어요. 하나만 컬렉션 하라는 형의 조언에 전 조명을 택했죠. 건축과 인테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조명이 전 유독 좋았거든요."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시작한 15년 전부터는 특히 19세기~20세기 초에 사용된 산업용 조명의 기능성과 조형성에 주목해왔다. 가로등, 선박, 공장, 공연장, 치과 등에서 사용된 사연 많은 조명이 그의 컬렉션 리스트에 적혔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시초를 따라가보면 19세기의 이름없는 숙련공들에 닿아있어요. 당시 일터에서 사용할 테이블이나 조명, 컵 등은 숙련공들이 직접 제작했는데, 불필요한 디자인은 빼 단순하면서도 기능성은 빼어나죠." 그가 그룹전 내 자신의 전시 공간에 '이름 없는 명작'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빈티지 조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배씨의 몫이다. 때론 조명 갓과 일부 다리만 살려 용도와 형태를 바꾼다. 기다란 다리가 달려 거실에 사용하는 조명은 1910년대 치과의사가 사용하던 것이다. 누워있는 환자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열고 닫을 수 있는 갓은 그대로 살리고 벽에 붙어 있던 다리를 세울 수 있게 바꿔 달았다.
이 같은 유연성과 실용성은 그가 자체 제작하는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레스토랑 조명용으로 제작했다는 펜던트 조명에는 카메라 조리개 형태를 적용했다. 음식은 잘 보이고 눈은 부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조명의 밝기를 전구가 아닌 조명 갓을 조리개처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조절할 수 있게 한 발상이 재미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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