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려워도 난 가 / 막장 낭떠러지 난감해도 난 가 / 다들 반가워 여기는 작전시티 / 얼굴 잘 생기면 단가 / 몸매 잘 빠지면 왕관 쓰나 / 잠깐 나는 안 해요 / 여기는 작전시티…."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영화 '작전시티'는 대사가 거의 랩이다. 시종일관 음악이 흐르고 중간중간 화면에 등장하는 래퍼들은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연방 중얼거린다. 지난달 말 598편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제2회 올레스마트폰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이 영화로 영화감독 타이틀까지 갖게 된 힙합 가수 채여준(30)씨는 "장르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힙합 정신을 마음껏 보여주고 싶었다"며 "짜여진 각본 대신 하고픈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랩으로 풀어낸 게 인정받은 것 같다"고 했다. 작전시티의 '작전'은 그가 나고 자란 인천의 작전동에서 땄다.
10년차 힙합 가수인 채씨가 연출하고 팀 니오크루세이더스의 멤버 왕현구(30) 최기석(29)씨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얼핏 보면 힙합을 소재로 한 음악영화.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단순한 음악영화가 아니다. 아이돌 음악이 사라지고 힙합이 주류가 돼 대한민국 음악 문화를 지배한다는 설정인데, 마지막 남은 문화자유도시인 작전시티를 지키기 위해 랩 배틀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 그 아이돌 음악이 지배하는 현실과 정반대의 상황. 그는 "무엇이든 한쪽으로 쏠려 좋을 게 없지 않냐"며 "아이돌 일색인 상황에서 힙합은 비주류가 되고, 힙합 가수들은 외면당하는 현실을 꼬집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중 "모두 힙합만 하느라 진부한 사랑 노래나 이별 발라드는 완전히 사라지겠어"하는 래퍼의 대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역설이다.
15분 분량의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젊은이 특유의 재기 발랄함이 넘친다"는 게 중평. 하지만 채씨는 "그 발랄함은 부족한 제작비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100만원의 제작비로 세트장을 꾸미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가공하지 않은 현실을 최대한 특별하게 만들어야 했죠." 제작기간 13일에 촬영, 조명, 음향 감독은 출연자들이 돌아가면서 맡았고, 채씨 자신도 영화에서 1인 3역을 했다.
영화제작 경험이라고는 없던 그가 처녀작에서 이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10년 가까운 힙합과의 인연이 큰 몫을 했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힙합이 너무 좋아 대학(인하대 언론정보) 2학년 때 중퇴하고 밴드를 만들었죠. '비트 씨씨엠'이라는 밴드였는데 1집을 내고 활동해서 제법 이름을 알렸죠. 군대 가기 전에는 YG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에 합격하기도 했다니까요."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전역해서 보니 아이돌 음악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었고 '힙합 가수 채여준'을 찾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힙합을 버릴 순 없었다. "좋은 음악으로 승부하면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 믿었죠."그 같은 집념 덕분인지 인기도 꽤 끌었다. 그는 "2008년 자살이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살아야 해'라는 음악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자랑했다. 그 후로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을 추모하는'더 드리머', 천안함으로 희생된 장병들을 기리는 '3월 26일', '히어로즈' 등으로 힙합 가수의 명색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과는 게임이 안됐다. 그가 일반 밴드에서 래퍼로 부업을 뛰고 있는 이유다.
그래도 채씨는 힙합을 접을 생각이 없다. 상금 2,000만원을 밑천 삼아 음악과 영상을 접목하는 새로운 작업을 구상 중이다."뭘 하든 결국엔 사람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는 음악이 될 겁니다. 제2, 제3의 작전시티를 기대해 주세요."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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