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폐아입니다. 흔히 말하는 발달 장애인입니다. 그것도 1등급 중증에 해당합니다. 제 소개를 빠트렸네요. 올해 열네 살, 경기 의정부시 해룡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도현이라고 합니다. 자폐 1등급이면 가장 중증인데 왜 특수학교에 다니지 않느냐 구요? ㅎㅎ 그건 전적으로 부모님의 '높은'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소통력이 떨어져 장애인이라고 따돌림 당할 가능성이 컸지만 부모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를 일반 중학교에 보냈습니다. 덕분에 저는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도 비장애인 학생과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나름 친구들도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 가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물론 집에서도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모님께선 제가 두 살 때부터 '엄마''아빠' 말만 하고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깜짝 놀라 저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결국 자폐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부모님께선 저 때문에 평생 쏟을 눈물을 한꺼번에 다 쏟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벌써 10여 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입니다.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어쩌면 저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우울한 존재일수도 있습니다. 부모님께선 그런 내색을 전혀 안 하시지만 눈치로 그 정도 분위기쯤은 파악 합니다.
이렇게 펜을 든 이유는 최근에 저의 아버지께 경사스런 일이 있어 함께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저 때문에 늘 그늘진 마음을 안고 계신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NH농협은행 박용국(46) 테니스 감독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끄는 NH농협은행 테니스 팀(이예라ㆍ홍현휘ㆍ정윤영ㆍ함미래)이 2012년 실업테니스연맹전 1차 대회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해 6연속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중심에 예라 누나가 앞장 서서 맹활약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예라 누나는 단체전과 함께 여자 단ㆍ복식을 모두 휩쓸어 3관왕에 올라 겹 경사를 맞이했습니다.
주변에서 6연속 우승도 대단하지만 최고권위의 대통령기 대회도 NH농협은행이 14연패를 일궜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저의 아버지 지도력을 칭찬 좀 해도 되지 않을 까요.
아 참. 자폐아들에게 간혹 나타나는 '서번트'(Savant)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영화의 소재로 회자되곤 했습니다. 국산 영화 과 외국영화 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예체능 과목을 좋아하지만 서번트 증후군 같은 재능은 없습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부모님께서 저의 자폐증세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에 나서, 제가 모든 종목의 운동과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지난해 초등학교 졸업 무렵엔 선생님들께서 '이빨 달린 꽃' '바닷물에 사는 금붕어'등 제 그림 6점을 가지고 달력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최근엔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말과 행동이 어눌해 많이 뒤처진 아이로 보일 수 있지만 이처럼 제 힘으로 앞날을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제 인생 항로의 등대지기인 부모님께서 승승장구하시듯 말입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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