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구성하는 7개 토후국(土侯國) 중 대표 선수인 아부다비와 두바이. 풍족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맏형 노릇을 하는 아부다비 거리의 가로등은 전구가 6개짜리이고, 첨단 도시 인프라 구축을 통해 중동의 금융허브로 자리잡으려는 둘째 격인 두바이의 가로등은 전구 4개짜리다. 현지인들은 가로등의 차이를 최근 두 도시의 처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한다.
고유가에 힘입어 대규모 석유화학플랜트와 원전, 사회기반시설(SOC) 등 사회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더하고 있는 아부다비의 여유와,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야심 찬 도시 개발에 나섰으나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두바이의 쪼들린 사정이 두 도시의 가로등 전구 수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전 세계 크레인 10대 중 3대는 두바이에 있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두바이는 전세계 건설시장의 메카였다. 하지만 2009년 11월 두바이 국영 개발회사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유예(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후 아부다비의 재정원조를 받으면서 '사막의 기적'은 하루 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두바이의 몰락이 시작된 지도 벌써 2년5개월. 하지만 침체의 그림자는 여전히 두바이 부동산 시장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침체의 그림자가 가장 어두운 곳은 업무용 빌딩.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유수 금융기관과 외국 투자기업들이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바이에서 일제히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이들 외국기업을 겨냥해 건설된 오피스 건물들의 공실률이 치솟았다. 두바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간선도로 '셰이크자예드 로드'를 따라 양 옆으로 빼곡히 들어선 마천루 빌딩들. 전세계 거대 금융회사들이 앞다투어 두바이로 몰려들 당시엔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빌딩 주인들이 이젠 임차인을 애타게 찾고 있다.
새로 지어진 첨단 오피스 빌딩 외벽은 물론 기존 빌딩들에도 두 개 건너 하나 꼴로 임차인을 찾고 있는 대형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자금난에 발목이 잡혀 1년 이상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처럼 방치된 건물도 상당수 눈에 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CBRE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1~2%선에 불과하던 두바이 오피스 공실률은 3월 현재 40% 선을 넘어섰다. 또 다른 다국적 부동산컨설팅 기업인 존스랭라살 중동ㆍ북아프리카 법인이 조사한 두바이 오피스 공실률은 이보다 다소 적은 29%였다. 아무튼 오피스빌딩 2, 3개 건너 하나 꼴로 빈 건물이란 얘기다.
두바이 부동산의 위기는 세계 최고층 빌딩이란 자부심이 강한 부르즈칼리파 조차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인터넷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르즈칼리파의 아파트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가격에 비해 30~40% 가량 떨어졌다. 오피스 공실률도 5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현지인들은 겉만 화려하지 안에 들어가면 썰렁하다고 말한다. 부르즈칼리파 인근 두바이 미디어 시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나디아 할리메씨는 "부르즈칼리파가 절반은 비었다는 말도 있는데, 실제 저녁에 보면 불이 켜진 곳보다 불이 꺼진 곳이 더 많다"고 전했다.
고층 아파트 중심의 주택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UAE 영자신문 더내셔널은 최근 두바이 부동산개발업체 이마르 프로퍼티스를 인용해 그 동안 도심 고층아파트에 쏠렸던 주택 수요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교외 빌라로 이동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마르의 지난해 아파트 거래 매출은 11억1,000만 디르함(약 3억 달러)으로, 전년(75억6,000만 디르함ㆍ약 20억 달러)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반면 빌라 거래 매출은 같은 기간 5억1,7000만 디르함(약 1억5,000만 달러)에서 9억5,870만 디르함(약 2억9,000만 달러)으로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두바이= 글ㆍ사진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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