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눌러온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봤어요. 새누리당도 그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는 거 아닌가요?"(서울 서초구 주민 문지훤씨)
"민간인 사찰은 어느 정권이든 일정 정도 해오던 관행 아니었나요?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인들끼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만으로는 표심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봐요."(서울 송파구 주민 오승일씨)
19대 총선이 의외로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서울시민의 선택은 달랐다. 4년 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게 40석을 안겼던 서울시민이 이번에는 민주통합당에 30석, 통합진보당에 2석을 내줬다. 범 야권은 서울 전체 의석 수의 67%를 차지, 권토중래에 성공한 반면 새누리당은 16석에 그쳤다. 과연 무엇이 서울시민의 표심을 좌우했을까.
서울에서 통한 정권 심판론
소위 여당지역인 서울 서초구에 살고 있는 김정민(34)씨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정권 차원의 민간인 사찰과 언론통제, 인터넷 상의 표현에 대한 잦은 규제 등에 대해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종로구 평창동 주민 안모(52ㆍ사업가)씨도 "4대강 사업 등 지난 4년간 정부가 해온 숱한 나쁜 정책을 심판 하는 차원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정권심판론이 서울시민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등포구 주민인 직장인 김모(34)씨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국민 생활이 질적으로 나아지지 않았고 대통령 공약 사항이 정책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경고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민주통합당 신계륜 후보를 찍었다는 성북을 유권자인 30대 부부는 "새누리당이야 MB정권과 거리를 두려고 하겠지만 결국 한통속이 아닌가. 이번 총선으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힘을 받았다고 하지만 대선은 또 다를 것"이라고 정권심판론이 우세할 대선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보수층 결집과 김용민 효과
당초 범야권의 압승이 점쳐졌던 서울에서 새누리당이 16석이라도 가져가게 된 것에 대해 시민들은 '보수 결집론'을 제기했다. 지난해 10ㆍ26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결과에 대한 학습효과와 선거기간 정권 때리기에 따른 위기 의식의 고조 등으로 보수층이 막판에 결집한 분위기는 곳곳에서 확인됐다. 여기에 노원갑에 출마한 시사 평론가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은 보수 결집에 기름을 부은 듯 했다. 김용민 후보가 낙선한 노원갑구 주민 정낙용(67)씨는 "내가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질도 없는 후보와 그를 공천한 당을 어떻게 찍어 줄 수 있겠느냐"고 분개하듯 말했다. 또 성북구의 전문직 종사자 윤모(57)씨도 "후보 사퇴를 하지 않는 김용민씨나 이에 조치를 취하지 않는 민주통합당의 처사에 분노했다"며 "이를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민생 중심 선거가 아쉽다
20~30대 직장인들 중에는 정치적 쟁점과 구호보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과 정책을 내놓는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이들도 많았다. 용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채민경(32)씨는 "새누리당에 크게 기대하는 건 없지만 앞장서서 대기업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범 야권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표를 줬다"고 말했다.
총선 출마자와 기성 정당들이 시민 생활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을 충분히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동작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조모(28)씨는 "정권 심판론이 투표를 독려하는 힘은 있었지만 정작 후보 개개인이 자신을 지지할 만한 정책은 내놓지 못했다"며 "지역구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해서 답답했다"고 털어놓았다. 민주통합당 우원식 후보를 찍었다는 노원을구 유권자 김모(45ㆍ직장인)씨는 "서민이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든 현 정권의 정책에 반대해 야당에 표를 던졌지만 솔직히 야당도 선거운동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며 "너무 정권심판 쪽에 치우쳤기 때문에 민생에 대한 정책홍보가 부족했다. 대안세력의 역량을 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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