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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설픈 진영논리에 매달리다 무너진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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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설픈 진영논리에 매달리다 무너진 민주통합당

입력
2012.04.1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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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에 개입한 정황이 여러 면에서 드러났다. 보수 언론조차 청와대가 개입한 불법사찰을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견주며,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장관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이 패배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주로 민주당 지지자였고 때로는 진보정당도 지지했지만, 민주당의 잘못과 게으름을 일차적으로 지적하고 싶다. 무엇보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에 민주당이 책임 있게 대응했어야 했다. 그가 사퇴하도록 유도하거나, 최소한 선을 뚜렷하게 그었어야 했다. '막말'은 그저 말의 문제도 아니었고 개인의 품격 문제에 그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후보가 성폭력을 부추기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면책되기 어렵다. 나꼼수 측 사람들은 이명박정부의 잘못에 비교하면 김용민의 잘못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태도를 취했는데,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은 어떤 책임에서도 면제되는가? 엄청난 착각이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질 때 나꼼수는 다른 미디어에서 하지 못하는 정치적 고발을 용감하게 했다. 꼼수를 부리는 더러운 권력에 부딪치기 위해선 정치적 카타르시스도 나름 필요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낄낄대는 조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은 정당의 역할을 깎아먹는 일이다. 정책적인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선 냉소적 조롱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민주당이 김용민 막말 사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문재인을 비롯한 친노그룹이 나꼼수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의 유산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노무현정부도 많은 실수를 하지 않았는가. 그런 과거의 유산에 기대어 미래를 창조한다? 한계가 있다.

야권이 정책적으로 연대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실패한 것은 자신의 정책에 대해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말 진보정당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많은 점에서 중도우에서 중도좌에 이르는 정당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무책임하게 보일 정도로'진보'를 내세운다. 거기서 여러 혼돈이 생긴다. 진보 유권자를 확보하는 이익이 있다고? 중도적 유권자들을 놓치는 손실이 더 클 수 있다. 물론 민주당만 진보를 자처하는 건 아니다. 진보의 이름으로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는 지식인들 다수는 내가 보기에 실제로는 중도이거나 리버럴이다. 그런데도 그들도 무책임하게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부추긴다. 공허한 이념싸움이 생기는 데에는 그들 책임도 적지 않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이 남용되는 데에는 미디어의 책임이 크지만, 두 번이나 집권한 제1야당이 아직도 진보 시늉만 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심하다. 복지와 교육 차원에서 과거 유럽의 좌파정책은 현재 한국에서는 실현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급식정도야 무상으로 가능하지만, 교육과 복지를 '무상'으로? 비현실적이거나 무책임하다. 무엇보다 집권하기 위해서도, 침묵하는 중도를 잡아야 한다. 유럽 좌파 정당들도 중도좌로 돌아서면서, 집권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정책의 정당들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론만 반복하면서, 민주당을 진보 정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야 말로 공허한 진영논리에 매달리는 일이다. 정말 정책선거가 이루어지려면, 우파와 중도 그리고 좌파 정책 정당이 함께 존재하게 하자. 그러기 위해, 민주당, 진보의 허세를 버려라.

진보의 허세를 버리는 일은 지역색을 깨는 데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원과 영남이 여당일색이 된 것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해 바람직스럽지 않다. 온건한 보수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호남을 지배하는 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영남의 고루한 지역색만 비판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이 먼저 지역색을 깨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민주당은 자신의 정책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진보당이 서울·경기·호남에서 선전하고 10% 득표한 것을 보라, 유권자들은 잘 하고 있다. 보수가 이긴 것도 아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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