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이혜영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불 같은 근성을 가진 연극인들과 지적인 경험을 하게 될 이번 무대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1999년 연극 '햄릿 1999' 이후 영화와 드라마 연기에 전념했던 배우 이혜영(50)이 13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에 선다. 그는 5월 2~2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헨리크 입센 원작 '헤다 가블러'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1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이미 배역에 몰입돼 있는 듯 시종 극적인 말투로 기대감을 나타냈다. 81년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해 '문제적 인간 연산'(1995)의 장녹수, '사의 찬미'(1988)의 윤심덕 등을 연기한 그는 "무대를 통해 다른 장르에서 만나기 힘든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늘 스스로를 연극배우라고 생각해 왔다"며 "지난 13년 간의 삶이 연극배우에게 필수인 자유롭고 창조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돼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웠다"고 말했다.
'헤다 가블러'는 '인형의 집'으로 친숙한 입센의 대표작이지만 국내에서는 여배우의 역량 문제 때문에 소극장 공연과 아마추어 단체의 무대로만 몇 차례 선보였던 작품. 삶의 조건이 평온하고 안정적인 듯 보이는 여성 헤다 가블러가 타인의 욕망과 얽혀 내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파멸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명동예술극장이 처음으로 중극장(550석) 연극으로 본격 제작한다. 이혜영이 무대 복귀를 결심한 덕분이다. "명동예술극장 기획팀에서 저와 꼭 작업하고 싶어서 제게 어울릴 작품을 찾던 중 결정한 게 이 연극이라고 해요. 역사적인 영웅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삶에 충실한 한 여인의 이름을 내건 이런 매력적인 작품이 또 있을까요? 전 헤다 가블러라는 이름에도 매료됐어요."
연출가 박정희씨도 "번역극은 소화할 만한 배우가 없어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여배우가 날 것의 욕망을 표현해야 하는 '헤다 가블러'가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며 "이혜영씨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해 볼 만하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혜영은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이번 공연으로 어쩌면 방향을 상실해 버렸을지 모를 이 시대 한 여배우가 용기와 방향성을 갖게 됐기 때문"이란다. "가끔 공연장을 가 보거나 지면을 통해 요즘 연극을 접하면 판이 많이 달라져 있는 듯했거든요. 내가 구닥다리 같고 설 자리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꽉 잡은 거죠. 나는 헤다 가블러고, 고로 존재한다.(웃음)" 1644-2003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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