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한 여자가 스쳐간다
불현 듯 아주 낯익은, 뒤돌아본다
그녀는 나와 상관없는 거리로 멀어진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철 지난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처럼 그녀는
기억의 지느러미를 흔들고 거슬러 오르면
전생의 내 누이,
그보다 몇 겁 전생에서
나는 작은 바위였고 그녀는 귀퉁이로 피어난
들풀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벌레였고 나는 먹이였거나,
하나의 반짝거림으로 우주 속을 떠돌 때
지나친 어느 별일지 모른다
뒤돌아보는 사이, 수천 겁의 생이 흘러버리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쳐간 바람, 또는 향기는 아니었을까
반짝이며 내 곁을 지나친 무수한 그녀들,
먼 별을 향해 떠나가고.
● 오후에 소포상자를 받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향기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열어보니 친구가 보낸 작은 천리향 두 그루. 아침에 이 시를 읽을 땐 사랑했던 그녀에 대한 시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천리향의 퍼져나가는 달콤함을 맡고나니 어느 봄밤 시인의 어깨에 떨어진 꽃잎에 대한 시가 아닐까 싶어요. 수천 겁의 생이 흘러 식물로 태어나면 어떨까요? 어눌한 목소리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으니 혹시라도 품은 간절한 마음은 어떻게 전하나? 거리를 거닐 때마다 날 따르는 저 봄꽃 향기들은 전부 왕년에 나를 흠모했던 녀석들의 수줍은 환생? 하, 하, 하, 먼 별을 향해 웃어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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