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8)씨는 주식거래단말기(HTS)만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코스피지수와 삼성전자는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는데, 오래 전 반 토막 난 자신의 보유종목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김씨는 "1년 넘게 기다려도 찔끔 반등하다 폭락하니 요즘 증시 활황은 남 얘기일 뿐"이라고 푸념했다.
이종숙 유진투자증권 도곡역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개인투자자가 주로 산 대형주들은 1년 전과 비교하면 20~30% 손실 상태"라며 "삼성전자만 독주하고 있어 개미들의 체감지수는 1,800 수준"이라고 말했다.
증시 생태계가 강자(强者) 독식에 휘청거리고 있다. 최근 잠시 숨을 고르고 있지만 올 들어 삼성전자 등 극소수 대형주 위주의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시장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했다. 개미들만 죽을 맛이다.
실제 연초 이후 시가총액 1, 2위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모두 20% 이상 급등한 반면 코스피지수는 10%도 오르지 않았다. 코스닥지수는 3% 남짓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이르는 '전차(電車) 부대'의 질주에 나머지 종목들은 납작 엎드린 형국이다.
삼성전자의 독주와 현대차의 뒤늦은 합류는 착시효과를 키우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10일 코스피지수는 1994.41이지만 삼성전자를 빼면 1,718.4로 뚝 떨어진다. 더구나 전차 부대의 시가총액 비중이 전체 유가증권시장의 22.1%에 달해 두 종목이 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시가총액 3~10위의 비중(17.3%)을 다 합쳐봐야 삼성전자(16.9%) 수준이다.
과거에는 대형주 위주의 주도주가 상승을 이끌면 차차 코스피 중소형 종목과 코스닥 대표종목의 순서로 상승세가 확산됐으나, 요즘엔 이런 '샤워효과'마저 실종됐다. 아랫목은 펄펄 끓는데 윗목은 여전히 냉랭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수급의 열쇠를 쥔 외국인과 기관의 태도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성봉 삼성증권 시황팀장은 "최근 장을 주도하는 외국인 자금은 안전하면서 수익성도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차에만 눈독을 들인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유가증권시장보다 4배 가까이 급등하며 반짝 한풀이에 나섰던 코스닥시장이 지난해 말부터 무너진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당시 유럽 재정위기로 외국인이 관망하는 틈을 타 기관과 개인이 장을 주도하면서 코스닥 종목이 수혜를 입었지만, 외국인이 귀환하자 맥을 못 추고 있다.
기관투자자는 시장 움직임에 끌려가는 처지다. 지수가 오르면서 펀드 환매수요가 늘자 보유종목 중 상승을 주도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대형종목은 보유한 채, 변동성이 높은 소형종목들을 팔아 환매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코스닥시장에서도 3월부터 발을 빼고 있다. 급기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194조원)으로 코스닥시장(전체 시가총액 약 105조원) 전 종목을 두 번 살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증시의 강자 독식구조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9월 이후 주가가 2배나 오른 삼성전자의 상승 여력은 10% 정도고, 현대차는 삼성전자 대안으로 상승한 걸 감안하면 전차부대의 독주 체제가 끝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성봉 팀장은 "그 시기는 미국 중국 유럽의 남은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실적시즌이 돌아오는 이달 말쯤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발 물러나 관망하는 게 최선"(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위원)이라는 조언도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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