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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류'를 또다시 망치려는 사람들

입력
2012.04.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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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어디 가까운 공연장이나 경기장을 빠져 나오는 인파인줄 알았다. 평일 한낮인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떠밀려 걸을 수 밖에 없다. 일본 도쿄 신주쿠 인근 신오쿠보 거리의 풍경이다. 한국식당과 상점이 줄지어 있다. 인근 대형할인매장'돈키호테'에는 아예 대형 한국상품 코너까지 두었다. 식당 이름도, 메뉴도 한국말로 '부대찌개''삼겹살''떡볶이''호떡'이다. 휴일이면 하루 6만 명의 일본인들이 찾는다고 하니 그야말로'음식 한류'현장이다.

9일 밤 12시 MBC TV가 < K-POP 스페셜 콘서트>를 방영했다. 지난해 9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한 공연 실황이다. 세 차례 모두 도쿄돔 5만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어 11월 사이타마에서 열린 SBS의 <서울- 도쿄 뮤직 페스티벌 2011> 의 열기도 비슷했다. 지난해 '카라' 한 팀이 일본 공연에서 벌어들인 돈만 450억원이다. 소녀시대나 동방신기는 훨씬 많다. 불황인 일본 음반시장에서도 지난해 한국 가수들만은 22.3%나 늘어난 3,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로까지 확산되면서 모든 것이'한류'로 통한다. 이제는 해외 어디서 자그마한 파티를 열거나 식당을 열어도 한류이고, 예전 같으면 그냥 그룹전인 국내 전시회도 자칭 'K-Art'다. 뮤지컬도, 연극도, 패션도, 심지어 전통예술과 민속에까지도 2.0, 3.0, 4.0 버전을 붙여 한류라고 한다. 이 무슨 일방적 착각이고, 문화적 오만인가.

정부의 문화정책과 지원도 호들갑이다. 한류 활성화란 이름으로 일회용, 전시성 음식잔치에 1,000억원이나 쓰고, 스마트 콘텐츠에도 50억원을 지원한다. 한류문화진흥회자문위원회, 한류문화진흥단에 이어 한류기획단까지 만들겠단다. 한류 전파의 거점이 될 해외문화원도 연말에 멕시코, 터키, 인도, 헝가리에서 문을 열면 24개국 28개소가 된다. 덕분에 관광객이 11%나 늘어나고, 경제효과가 6조원에 달하고, 여기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까지 감안하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한번 경험했다. "한류를 위해"라고 소리치는 그 사람들이 어쩌면 한류를 일시적인 거품으로 만들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이미 조짐이 보이고 있다. 벌써 신오쿠보의 일부 식당은 맛도 없으면서 비싸기만 하다는 소문이 퍼져 외면 당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 특히 지상파도 동지가 아니라 '적'이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까지 방송의 권력을 이용해 인기 K-POP 가수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대규모 현지공연을 지난해 서너 차례씩 열었다. 올해 계획도 비슷하다. 기획사들이 소속 가수들 만으로 1년에 한 두 번 여는 콘서트의 희소성도 없어졌다. 한국은 돈만 벌어간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부 어디서도 이를 조율하지 않는다.

7, 8년 전 영화가 꼭 이랬다. 한류 스타가 나오는 작품이 인기를 끌자 마구잡이로 아류작품을 만들어 턱없이 비싸게 팔았다. 심지어 경험이 전무한 매니지먼트 회사가 직접 나서 영화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주연 여배우의 CF모음집 같은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 대참사를 맞았고, 지금도 '한류'에 다시 편입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고 있다.

정부는 입만 열면 '지원'을 외친다. 그것 역시 장기적 효과보다는 지금의 한류바람에 편승한 전시효과에 집착하고 있다. 3년 사이에 해외문화원을 2배로 늘렸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정규직 인력은 1명으로 줄여 기본업무조차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K-POP 열풍이 이제 막 불기 시작한 유럽, 남미와 이미 우리의 대중문화에 익숙한 아시아에 대한 차별화, 반한류를 막을 전략도 잘 보이지 않는다.

JYP 정욱 대표는 K-POP이 이끄는 한류 열풍도 3년 뒤면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과 중국도 우리의 시스템을 도입한 가수들을 배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지화, 공유화, 고급화, 차별화 없이 당장 단물 빨아 먹기에만 집착하면 그날은 훨씬 빨리 오고, 결과 또한 훨씬 참담할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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