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살인 사건의 피해자 A(28)씨는 도대체 언제 사망한 것일까. 경찰은 왜 112 녹취록을 공개해 놓고도 음성파일 공개는 거부하는 것인가. A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 우웬춘(42)씨는 과연 초범일까.
경찰이 지난 8일 청문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모두 공개했다"고 했지만 우씨 검찰 송치를 하루 앞둔 9일에도 수원 사건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남아 있다.
우선 A씨의 사망 시각이다. 우씨는 "(2일) 새벽 5시15분쯤 성폭행하려다 반항하는 A씨를 살해했다"고 줄곧 주장했다. 우씨는 노동일을 해서 휴대폰 타이머를 맞춰 놓는 버릇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소견은 다르다. 국과수는 "부검 결과 A씨의 위에 함박스테이크 36g이 남아 있었다"며 "전날 8시쯤 식사를 한 A씨의 음식 소화상태를 보면 2일 새벽 0시에서 1시 정도가 사망시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개인차나 스트레스로 인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새벽 2시를 넘겨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경찰도 국과수의 이 같은 소견을 토대로 A씨 사망시각을 새벽 0~1시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녹취록에서 나타났듯 건장한 체구의 우씨가 비교적 마른 체구의 A씨를 폭행하고 결박하는 과정에서 A씨의 비명소리가 점점 작아진 점도 이른 사망시각 추정의 근거로 제시한다. 술에 취한 우씨의 폭행이 심각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다. 특히 9일 CCTV 분석결과 우씨가 A씨를 계획적으로 덮치는 장면이 확인되면서, 그간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한 우씨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도 이 같은 추정에 신빙성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A씨가 생존한 시간에 일부 경찰력을 철수시키는 등 초동 대응에 실패한 경찰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A씨 사망시각을 새벽 1시 이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확한 사망시간 분석에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녹취록 음성파일 공개 거부도 의혹을 야기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경기경찰청 출입기자 3명을 상대로 음성파일을 공개하기로 했다가 공개 직전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돌연 취소했다. 앞서 언론들은 녹취록에 나오는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라는 112신고센터 근무자들의 대화 내용을 근거로, 우씨의 말이 녹음됐을 거라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경찰은 그러나 "음성파일 공개는 유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돼 부득이 공개를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녹취록은 모두 공개해 놓고 같은 내용의 음성파일만 법에 저촉돼 공개할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에 의문이 제기된다. 혹시 일부 내용이 지워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우씨가 지적 수준이 낮아 여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경찰의 주장도 믿기 어렵게 됐다. 우씨가 "어깨가 부딪쳐 말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A씨를 끌고 갔다"고 거짓 주장을 계속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점은 그가 초범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더한다. 우씨는 "A씨의 손이 나를 잡을 것 같아 눈을 감고 시신을 훼손하기 시작했다"며 "가방에 담기 위해 시신을 조각 냈다"고 진술했다. 발견 당시 A씨의 시신은 280여 조각으로 훼손된 채 비닐봉지 14개에 나눠 담겨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초범이 그 정도로 심하게 시신을 훼손하기는 어렵다"며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데다 비교적 솔직하게 대답해 여죄 가능성을 희박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소학교만 나온 학력의 우씨가 일부러 어리숙함을 위장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우씨의 범죄경력 및 수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하고 우씨 행적지 주변 사건을 정밀 재조사하기로 했다.
수원=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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