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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투표 꼭 합니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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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투표 꼭 합니다, 해요!

입력
2012.04.0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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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택시를 불렀다. 차에 오르고 보니 아파트 옆 라인 사신다는 늙수그레한 기사 아저씨였다. "막 밥 한 술 뜨고 났는데 콜이 뜨더라고요. 내가 몇 달 전에 사별을 했어요.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는 얘기예요. 그랬더니 혼자 밥해 먹기가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어요. 그래도 우리 아파트 주민이라 내 황급히 나왔어요."

아저씨는 처음 본 내게 말씀이 꽤나 많으셨다. 아무런 사정을 몰랐다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리고 간혹 억지웃음이나 지었을 텐데 숱이 없어 휑한 아저씨의 뒷머리를 보자니 얼씨구 같은 추임새가 절로 내 입에서 삐져나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쉴 새 없이 침을 튀기고 있었다. 얼마 전 아파트 동 대표가 되었는데 전임 대표가 여러 가지 심각한 횡령을 저질렀음에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며 사람 뽑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주먹 쥐고 연신 연설이셨다. "지금껏 나는요, 콩기름 하나 밀가루 한 포라도 준 것도 받아 먹은 것도 맹세코 없어요. 대표자는요, 누구보다 나한테 떳떳해야 해요. 국회위원 한답시고 나온 사람들, 거울 무서운 줄 알아야 해요."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서고 보니 양옆으로 저마다 반듯한 미소로 저마다 더 무리한 공약으로 나부끼는 선거 관련 플래카드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나저나 아가씨는 내일 누굴 찍으시려나. 그로부터 요금을 낼 때까지 침묵이 계속된 우리. 말리셔도 저 내일 꼭 투표할 거라니까요!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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