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아플 수 있어 좋아요." 감기로 연신 코를 훌쩍거리던 박하선(25)이 반달 눈을 하고 웃었다. 지난달 29일 종영한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후유증을 만끽하고 있다는 그는 촬영 걱정 없이 아플 수 있어 일부러 약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서라도 눕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6개월간의 촬영은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로 보답을 받았다. '하이킥3'는 시리즈 1ㆍ2편에 비해 미지근한 평가를 받았지만, 박하선만은 거침 없는 매력으로 지붕을 뚫을 듯한 인기를 얻었다. '단아한 중전마마'의 통쾌한 역습이었다.
5일 만난 박하선은 '하이킥3'에 대해 "가장 바쁘고 힘든 작품"이었다고 했다. 2~3주에 하루 쉴 정도의 빡빡한 촬영 일정 탓에 시간에 쫓겨 대본도 못 보고 촬영장에 나갔다가 NG를 여러 차례 내고 눈물을 쏟기도 했단다. 그런 그를 지탱시켜 준 건 "난생 처음 받아보는 팬들의 응원"이었다. 연기에만 신경 쓰느라 다른 출연자들과 친하게 지낼 여유도 없었다니, 노고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박하선이 '하이킥3'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렸다. 전작 영화들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지 못한 데다, MBC 사극 '동이'(2010)의 인현왕후 역으로 얻은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들 우려했지만 김병욱 PD님은 제가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한 걸 보고 기대를 하셨대요. 처음엔 시청자들 반응이 좋지 않았죠. 그래서 목소리 톤부터 표정, 캐릭터를 하나하나씩 고쳐나갔더니 조금씩 호응이 생기더군요."
박하선의 연기 변신은 일취월장이었다. 어수룩하고 엉뚱하면서도 다혈질인 국어교사 박하선을 연기한 그는 시트콤에 딱 맞는 코믹한 표정연기와 '몸개그'로 하이킥 월드의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우울해 보인다는 지적에 목소리 톤을 높이고 자주 웃는" 등의 노력과 실험을 계속한 결과였다. 그는 "웃기려고 욕심을 낸 건 반응이 별로 좋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했거나 잘 못했다고 생각한 게 오히려 반응이 좋았던 것이 신기했다"고 했다. 극중 박선생이 마음 약한 성격 때문에 놀림 받는 게 싫어 변신을 시도했던 '블랙하선' 에피소드나 스스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롤리폴리' 춤이 대표적인 예다.
'하이킥3'으로 박하선은 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동이' 출연 후 그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린 후배들이 스타덤에 오르는 걸 보면 속상했고, 인기가 없어 무시당할 땐 서러웠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촬영할 땐 "내가 이렇게 연기를 못해서 계속 민폐를 끼친다면 연기를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앞이 막막했다"고 했다. "'하이킥3' 출연 전엔 사랑 받는 캐릭터가 되는 게 목표였다"는데, '하이킥3' 최고의 캐릭터로 꼽히며 스타덤에 올랐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박하선은 고교 시절인 2005년 SBS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도돌이표 같은 생활이 숨막혀 연기자가 됐다는 그는 영화 '바보'(2008) 촬영장에서 느낀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주위가 조용해지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더군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상을 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연기를 떠나면 후회할 것 같아요. 결혼하면 아이는 세 명 정도 낳아서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때까진 열심히 해야죠. 지금 목표는 정극에 출연해서 배우로서 인정 받고 자리를 잡는 거예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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