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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도파 설 자리 없는 미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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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도파 설 자리 없는 미국 정치

입력
2012.04.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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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보면 미국 정치판에서도 중도파가 설 자리가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 그는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일찍부터 대세론을 탔고 지금은 공화당 대선 후보로 굳어진 상태다. 공화당에 그마저 없다면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맞설 후보를 찾기가 어렵다. 정치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2월 28일 미시간, 애리조나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이후 미 언론의 정치보도에서 공화당 경선 비중이 83%에서 23%로 줄어든 사실을 들며 롬니 전 주지사가 이때 이미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 끝나야 했을 경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쟁자 특히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과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그를 놔주지 않고 있다. 이들이 8월 말 공화당 전당대회까지 완주하겠다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롬니 전 주지사가 중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깅리치 전 의장은 그가 공화당의 보수이념을 버리고 중도주의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선을 계속하겠다는 논리를 편다. 샌토럼 전 의원도 중도적인 롬니 전 주지사를 믿지 못하는 강경 보수 유권자의 지지에 기대 있다.

이들의 지적대로 롬니 전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과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될 만큼 중도 성향이 강하다. 일례로 롬니 진영에 정통한 한 인사는 "롬니 후보가 집권해도 오바마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한반도 정책을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 둘의 차이는 소울 가수 알 그린의 노래를 흥얼대는 것과, 난해한 미국 국가의 가사를 암기하는 것 정도의 차이에 비유된다. 미국 유권자는 진보가 20%를 약간 넘고 보수는 30%를 조금 넘으며 중도는 40% 중반 정도다. 따라서 중간지대에 서는 게 당선에 유리하다. 그러니 롬니 전 주지사가 중도 성향 때문에 당의 결집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공화당에서 중도ㆍ온건파의 입지가 좁아진 탓이 크다. 과거에는 양당 또는 당내 강온 세력간 교량 역할을 하는 정치인이 출현해 갈등을 푸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미국 정치를 중간지대에서 조정해줄 세력은 대부분 사라졌다. 영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국회에 거의 진출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과 같다. 공화당 내 구보수와 온건파의 목소리가, 도덕적 가치와 미국의 정통성 회복을 주장하는 신보수 및 기독교 우파에 묻혔다고 볼 수 있다. 공화당은 그래서 자주 근본주의적 모습을 보인다. 롬니 전 주지사도 강경 보수 가치에 휘둘리면서 중간지대를 떠나 우향우하고 있다. 외교정책에서 그는 러시아를 미국의 제1공적이라 말하고 중국에는 "우리의 점심을 먹고 있다"면서 강경대응책을 예고했다.

그러나 정당의 말 바꾸기를 추적해 보면 진보와 보수라는 게 서로 건너지 못할 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민주당이 찬성하는 급여세 감면안은 공화당이 2009년까지 지지하다 반대로 돌아선 것이다. 극빈층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역시 민주당 집권 전까지 8년 동안 공화당이 찬성하다가 반대로 돌아선 것이다. 의사진행방해를 비난하며 상원 대수술에 찬성하는 정당이 지금은 민주당이지만 4년 전까지는 공화당이었다. 이념적 잣대란 것이 대개 민주당이 지지하면 진보이고 공화당이 지지하면 보수가 되는 게 정치 현실인 것이다.

유명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미국 언론에 가장 크게 좌절한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스스로 좌파와 우파가 무엇인지 규정토록 허용한 일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지지와 반대는 종종 편의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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