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믿을 수가 없다. 경기 수원시 주택가에서 20대 여성이 112에 성폭행 신고를 하고도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 초동수사 과정의 부실과 이에 대한 거짓 해명, 이른바 '룸살롱 황제 뇌물리스트' 사건 등에서의 잇단 뇌물수수로 경찰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 임무인 치안의 부재에다 끊이지 않는 비리까지, 국민들은 경찰에 불안해 하며 비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일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경기지방경찰청은 112 신고 매뉴얼대로 처리했다고 해명했지만, 사건 접수부터 현장 수색까지 수사 전반이 허점투성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성폭행 신고 내용에 장소는 없었다. 통화 시간은 15초에 불과했다"는 경찰의 설명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A(28)씨는 1일 밤 112에 전화하면서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이라고 장소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신고했다. 통화 시간은 15초였다는 경찰의 해명과 달리 80초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112신고센터는 담당 경찰서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A씨의 신고 내용을 정확히 알려 주지도 않았고, 경찰은 신고 지역 주변에 대한 탐문과 수색을 겉핥기 식으로 진행했다. 신고 직후 35명의 경찰관을 투입했다는 경찰의 해명도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경찰은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은 6일 뒤늦게 "경찰의 미흡한 대응에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경찰의 비리는 여전히 끝 간 데가 없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40ㆍ수감 중)씨에게 수억원을 받은 경찰관 4명이 구속된 데 이어, 이씨와 128회나 통화한 총경급 간부 등 6명이 2010년 경찰의 자체징계 대상에서 누락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등 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소위 '사채왕'으로 불리는 최모(58ㆍ구속)씨와 연루된 비리 경찰관의 리스트가 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두 사건에 연두된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관은 간부를 포함해 수십여명에 이른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최근의 불미스런 사건들에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며 "청장 직속으로 부패비리 근절 태스크포스팀을 신설하고, 내부조직 점검을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이 비리가 나올 때마다 태스크포스를 만든다고 나선 것이 지난해 8월 이후에만 세 번째다.
시민 김모(50)씨는 "경찰이 수사권 독립 운운하며 목소리만 높이더니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며 "검찰과 갈등할 때는 그럴 만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믿음이 안 간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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