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에 성폭행 위기에 처한 여성이 112신고를 하여, 위치와 정황을 오랫동안 설명하며 구조를 요청했는데 이튿날 낮에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치안력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음은 물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늘어놓은 거짓과 변명은 경찰의 존재이유를 의심케 하고도 남는다. 지난 1일 경기 수원시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성폭행 살해 사건(한국일보 5일자 8면 보도)을 보는 국민들은 너무나 참담한 마음이다.
사건 후 밝혀진 피해자의 112신고전화 내용은 차마 읽기조차 힘겹다. 그 여성이 가해자의 감시를 피해 성폭행과 살해의 두려움을 호소한 1분20초 동안의 통화는 일반인도 생생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더구나 신고 전화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금세 목숨의 위협이 닥쳤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런 신고전화를 마치 신변 상담하듯 받으면서 자신들에게 길 안내를 해 달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찰은 신고전화를 받고 13시간이 지난 다음 날 낮에야 현장에 도착, 이미 살해된 여성의 시신을 훼손하고 있는 용의자를 검거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거짓과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강력계 형사 수십 명을 현장에 보내 주변을 자세히 탐문했다지만, 당시 출동한 형사를 만난 주민은 거의 없었다 한다. 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할까 봐 조용히 출동해서 그랬다는데 말이 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피해자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위치와 정황을 설명했음이 드러나자 이번엔 통화내용을 축소ㆍ조작하려고까지 했다.
어제 조현오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았다. 이른바 '룸살롱 황제 사건'에 경찰이 연루된 데 대해 사과하며 부패 근절 특별팀을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자체 감찰을 했다지만 검찰에 의해 새로운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으니 사과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치안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정치적 형태의 사과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역시 경찰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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