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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불륜이 결혼을 망친다? 망가진 결혼이 불륜 낳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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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불륜이 결혼을 망친다? 망가진 결혼이 불륜 낳을 뿐

입력
2012.04.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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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사랑일까 - 리처드 테일러 지음ㆍ하윤숙 옮김/부키

결혼의 신화 - 아널드 라자루스 지음ㆍ박경애 옮김/시그마북스

10여년 전 인터넷에 엄마의 불륜을 고발한 한 여대생의 글이 올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방 어디 파출소장 아무개'라고 엄마의 실명과 직함까지 밝힌 글에 네티즌이 흥분하자, 여론 앞에 내동댕이쳐진 엄마가 '친딸에게 공개 고발당한 여자의 진술서'라는 글을 올려 항변했다. 사제지간의 강제 성관계로 시작해 임신 때문에 부득이 혼인 신고를 했고 살면서도 잦은 폭행과 남편의 외도로 오래 전부터 이혼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은 얼마 동안 엄마에 대한 비난론과 동정론으로 뜨거웠다.

지난해 국내 이혼 건수는 11만 4,300건. 부부 1,000쌍 중 약 9쌍이 파경을 맞았다. 가장 큰 이유는 '성격 차이'다. '경제 문제'도 중요하다. '부정(不貞)'은 그 다음이지만 배우자 서로를 황폐하게 만들고, 얽힌 제3자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파괴력 면에서는 다른 두 가지 사유를 훨씬 능가한다. 결혼 생활이 부정으로 일그러지는 이유는 무얼까. 부정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불륜이며 외도인가. 부정에 맞닥뜨릴 경우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이 같은 의문에 답하면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인지를 되짚어 본 미국 철학자, 심리학자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브라운대 등 미국 여러 대학에서 형이상학, 도덕 윤리를 강의한 리처드 테일러 교수의 <결혼하면 사랑일까> 는 철학자의 책치고는 다분히 이색적이다.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부부생활을 이론적으로 해석해나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정을 해보았거나 배우자의 부정을 겪은 사람들의 상담 기록을 토대로 부정과 결혼 생활의 실체를 해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애 시절의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 생활의 핵심인 '부부애'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낭만적인 사랑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에게 이끌리며 '지성과 이성에 도전하는 화학작용'이라면, 부부애는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다. '부정'은 그래서 이런 욕구를 채워주는 과정이 불충분할 때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사건이다.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을 성적 욕구가 강하다는 식으로 조금 유별나게 볼 때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종족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정조를 지켰다고 자긍심을 느낄 필요'도 전혀 없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에게서 이런저런 욕구를 채웠거나 아니면 삶이나 가치의 인습에 얽매여 있는, '운이 좋거나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혼 제도를 중요하다고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고, 반면에 진지한 불륜이라면 이에 긍정적인 의미가 없다고 할 만한 타당한 이유도 없다'며 저자는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강조한다. '불륜으로 결혼 생활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불륜은 '실패한 결혼 생활의 결과'라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정의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면서 그는 여성은 남편이 지루해져서 부정에 빠지고 남성은 아내가 냉담해져서 불륜을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지루하다는 감정이나 냉담하다는 느낌 모두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는 기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한 배우자를 가정파괴자라거나 바람둥이로 멸시하고 파탄의 책임을 제3자에게 돌릴 때 상황은 더 이상 수습하기 어려워진다. 그나 그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문제의 원인은 '결혼 생활 내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책 끝에 배우자의 부정을 결혼 생활의 파경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상대를 염탐하거나 함정에 빠트리지 말고 상황에서 벗어나 있으라는 등 몇 가지 '규칙'을 조언했다.

이런 조언이 좀더 구체적으로 담긴 것은 수십 년간 부부문제를 상담해온 심리학자 아널드 라자루스의 <결혼의 신화> 이다. 상담 중 가장 빈번하게 접한 결혼 생활에 대한 오해 24가지를 추려냈다.

'남편과 아내는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 '행복한 결혼은 완전한 신뢰를 요구한다' '훌륭한 배우자는 자신의 파트너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같은 오해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테일러 교수처럼 그 역시 낭만적인 사랑이 좋은 결혼을 만든다는 건 환상이며 혼외관계가 결혼을 파괴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혼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나누고 결혼이 갈고 닦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에 따르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서로의 삶으로 돌진하지 않으며 서로를 신뢰하며 끊임없이 노력한다. 낭만적인 사랑을 성공적인 결혼의 기초가 되는 부부간의 애정으로 바꾸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그는 친절, 배려, 의사소통, 습관의 조화, 중요한 가치와 화제에 대한 합의 등을 꼽았다.

엄마의 불륜을 고발한 여대생은 엄마의 글을 보고 인터넷에 다시 올린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정말 모든 이들에게 죄송하고 할 말이 없습니다. 엄마에게도 죄송하구요. 그동안 저를 위로해주시고 또한 제 엄마에게 격려해주던 분들 이제 싸움을 멈추고 지켜봐 주세요.'"

부정한 것으로 의심되는 누군가를 다그치고, 그 일을 떠벌리는 것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는 두 책의 조언을 이 사건이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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