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밑에 도끼 들었다'는 속담은 총선을 며칠 앞 둔 지금 말의 문화를 잘 표현해준다. 부산의 한 국회의원 후보는 자객이 너무 많다고 울먹이기도 했지만, 선거에서 날아다니는 말의 비수는 무협영화를 보는 듯하다.
물론 이 속담은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을 수 있으니 말조심하는 뜻이다. 혀 밑의 도끼는 남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은 경우에 따라서 도끼가 되고 비수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혀 밑의 도끼는 말하는 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총선국면을 고려하면, 후보자가 무책임하게 내뱉는 말을 믿고 유권자가 그를 선택 하면, 그 말의 도끼는 나중에 우리의 미래운명을 향할 수도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 올수록 말의 도끼들이 사방에서 떠다니고 이미지의 정치가 판을 친다. 재미있는 진보통합당의 텔레비전 광고, 홍준표 후보의 앵그리버드 분장, 붕대를 감은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의 오른 손은 나에게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마도 박 위원장은 박빙의 선거구를 다니면서 유권자들과 수없이 악수를 해서 오른 손이 아팠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 위원장의 손을 잡았을테니까 손은 퉁퉁 부어올랐으리라 판단할 수 있다. 내가 이미지의 정치라고 해서 붕대를 감은 손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붕대를 감은 오른 손은 유권자와 악수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선거구를 다니고 있다는 기호로 읽힌다는 것이다.
문제는 박빙의 총선과정에서 펼쳐지고 있는 말들의 향연이다.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마다 선거유세 차량에서 수많이 말들이 쏟아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판단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이다. 그 결정은 곧바로 투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이 유권자에게 도끼로 다가올지 축복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다. 말의 경연장에서 유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적 판단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중요한 제도다. 상식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의 결정'이다. 여기에 정치적 평등, 자유, 정당한 규칙의 채택, 법의 지배, 인권의 보장 등과 같은 보완개념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학에서 정의하는 민주주의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는 말을 통해서 의견과 의지를 형성함으로써 권력을 만들어내고 정당화하는 제도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이라는 도전적인 책에서 '의사소통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의사소통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로 말을 통한 권력의 확립과 정당화의 원리를 강조했다. 이는 다수가 참여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수를 설득한 주장을 민주적 방식으로 선택함으로써 구성된 권력만이 정당한 권력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안, 토론, 동의 과정을 거쳐서 가장 설득력 있음을 증명한 주장만이 최선의 주장으로 선택되며, 이렇게 선택된 주장을 따를 때 그에 따라 영향 받는 모두가 공동의 운명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보면, '의사소통 민주주의'는 이상처럼 보인다. 지금 벌어지는 말의 경연에서는 정당과 후보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론 매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말들의 전쟁에 청와대, 여당, 야당, 주류 언론, 인터넷 언론 등이 함께 싸우고 있다. 총선 전날까지 말들의 싸움은 계속 될 것이고, 어떤 폭로가 오고갈지 알 수 없다.
선거는 미래체계를 결정하는 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어떤 공동체에나 미래체계가 있다. 유권자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동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미래 운명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말의 경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 선거문화에서 보여왔던 저열한 말들의 복수혈전에 매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혀 밑의 도끼는 우리의 미래운명을 향해서 날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창윤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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