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기에는 워낙 분량이 많은 데다 내용도 만만치 않아 사실 소설보다는 훗날 영화로 본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스스로 성장을 멈춘 소년 오스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두드리고 괴성을 질러대 거리 유리창을 깨는 장면이 선연하다. 요란한 양철북 소리와 날카로운 괴성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그의 저항방식이었다. 나치의 광기와 그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린 민중에 대한 통렬한 은유로 평가 받는 고전, 귄터 그라스의 1959년 작 얘기다.
■ 그라스는 독일 현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정면으로 다룬 이 소설로 일약 전후 독일의 대표작가 반열에 올랐고, 99년에는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그런 그가 2006년 말년이 돼서야 뒤늦게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나치친위대 SS의 대원이었음을 털어놓았다. 14세에 나치소년단 유겐트에 가입한 뒤 17세에 SS에 자원 입대했다는 고백이었다. 무자비한 치안공작과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은 일반SS대원이 아닌 SS기갑사단의 전차병이긴 했어도 충격은 컸다.
■ 그가 또다시 거센 논쟁에 휘말렸다. 핵 보유를 꾀하는 이란에 대해 선제공격을 공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며 비난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 됐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의 원죄의식을 갖고 있는 독일에서 반(反)이스라엘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당연히 이스라엘 정부와 유대인단체들은 격하게 반발, "유대인을 희생제물로 삼는 건 유럽의 전통이었다"며 그를 반유대주의자로 몰아붙였다.
■ 그라스는 전후 진보적 사회비판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SS 전력이 알려진 뒤엔 그를 보는 눈길이 크게 달라졌다. 조차 과오를 가리려는 것이었다는 등, 진정성을 회의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이번 이스라엘 비판 역시 충분한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력과 석연찮은 처신이 함께 거론되면서 무게감이 부쩍 떨어졌다. 마침 이번 총선에서 여러 후보들의 부끄러운 전력 논란에 겹쳐 지도자나 지식인의 처신이 어때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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