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프다. 이때껏 나는 아빠가 자리보전하는 것보다 엄마가 드러누울 때 더 큰 산을 마주하는 심정으로 살아온 것 같다.
자주 아픈 부모를 둔 까닭에 초등학교 때부터 훗날 치러야 할 부모의 장례식을 걱정했던 나, 또래보다 조숙하다는 게 매년 생활기록부를 장식한 선생님들의 품평이었던 터라 부모 생각 끔찍한 아이로 일찌감치 만들어졌던 나… 타고난 효녀가, 환생한 심청이가 나려니 자신해온 내가 큰 착각임을 알고 스스로 뭇매질을 하게 된 건 요 근래의 일이었다.
한 패션 디자이너가 손맛 좋기로 소문났던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장 먼저 김치부터 냉동실에 얼렸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고부터였다. 울면서 배추김치 한 포기 한 줄기씩을 조금씩 아껴가며 찢어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부터였다. 그래 그 김치! 엄마 죽으면 못 먹을 엄마 김치! 내가 엄마의 부재를 알뜰히 살뜰히 살핀 것은 혹여 엄마보다 엄마 밥상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이 아니었을까.
젓가락 하나 못 집을 만큼 기력 없는 엄마를 보면서도 엄마가 버무리는 잡채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식 키워 무슨 소용이냐고들 하는 거겠지. 하지만 어쩌랴, 자식은 엄마 등골 뽑아먹기로 작정한 채 태어난 요물들이니. 이 봄 엄마는 아픈데 엄마의 밥은 만날 먹고 싶고 하여 딸이 낸 묘안이 엄마의 요리책이니, 집집마다 그렇게들 남겨보면 어떨까. 이보다 더한 가보는 또한 없을 테니.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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