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에 따르는 어쩔 수 없는 아픔이라고 하기엔 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6일 오후 한국은행 본점 15층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 자리. 이주열(사진) 한은 부총재가 지난 2년간 꾹꾹 억눌러왔던 심경을 토로했다. 조직의 2인자로서 지금껏 단 한 번도 공식석상에서 내놓고 말할 수 없었던 총재의 개혁 행보에 대한 비판, 그리고 방어막이 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 부총재는 "(김중수 총재가 취임한) 지난 2년간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며 "부총재인 내가 느낀 변화가 그럴진대 직원 여러분들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글로벌'과 '개혁'의 흐름에 오랜 세월 힘들여 쌓아온 과거의 평판들이 외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60년에 걸쳐 형성돼 온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 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우회적으로 김 총재를 겨냥한 발언도 했다. "개혁 자체가 조직의 목적이나 가치가 될 수 없으며 '이 조직'이 아니라 '우리 조직'이라는 생각으로 대다수 구성원을 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가 모색되길 당부 드린다"고 했다. 또 "능력의 100%를 다하려면 몸이 감당 못하고 120%를 하려면 필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곱씹어봤으면 한다"고도 했다.
퇴임사에는 빠졌지만 앞서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가관리 실패도 인정했다. 이 부총재는 글에서 "물가안정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외부의 냉엄한 평가에 금융통화위원회 일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줄곧 떨리는 목소리로 퇴임사를 읽어 내려가던 이 부총재는 "한은은 제 인생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마지막 말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퇴임식에 참석한 김 총재는 퇴임사 내내 손에 턱을 괴고 먼 하늘만 쳐다봤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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