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5일 '정치권의 복지 공약에 현실성이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분석 결과 발표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9조 위반으로 결론 내린 것은 올해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동안 불거질 수 있는 정부의 선거 개입 논란에 대한 시비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관권 선거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정부 기관들이 각 정당 공약을 평가하고 이를 자유롭게 공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선거 관리상의 혼란을 예방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김용희 중앙선관위 선거실장은 "만약 선관위가 재정부의 발표를 묵인했다면 이번 총선은 물론, 향후 대선에서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치권에 한마디씩 거드는 행위를 관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정부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발표한 것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공직선거법 제9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선관위의 판단이다. 4일 재정부의 발표에 앞서 선관위가 "선거일 전엔 발표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선거법 제9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계기가 된 조항이다. 2004년 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가진 대통령 취임 1주년 특별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선관위는 이 조항을 들어 당시 노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또 선관위는 재정부가 각 정당의 복지 공약만을 특정해 소요 예산이 많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 특정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는 복지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간 '보편적 복지'를 강조해 온 민주통합당에 더욱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재정부의 발표가 유권자의 정당 정책 평가에 도움을 준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다수의 선관위원들은 정당 정책 평가는 유권자와 언론, 학계, 시민단체의 몫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경쟁으로 재정 운용에 압박을 받는 정부 입장에선 정치권 공약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정 행위"라는 반론도 나온다.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정 선거기간(13일)만 문제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선관위 측은 "선거일 전 180일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야는 이날 일제히 재정부를 성토했다.
새누리당 이상일 선대위 대변인은 "재정부가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하면서 각 정당 공약에 대해 품평회를 할 시간이 있었다면 그 시간을 서민경제를 살리는데 써야 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도 "재정부의 발표는 유권자에게 '복지공약=조세 부담'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행위"라며 "선관위의 자제 요청을 무시하고 선거 개입에 앞장선 박재완 재정부 장관과 김동연 2차관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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