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까? 민간인 불법사찰도 나쁘지만 엄연히 임기가 있는 기관장을 쫓아내기 위한 공작은 치사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다. 내 사람, 우리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한 인간과 그 가정까지 파괴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겠지만, 언제까지 정부는 이런 작태를 되풀이할 것인가. 한 기관장의 경우를 살펴본다.
2007년 5월 국방부 산하 기관장에 취임한 이모씨는 다음해 12월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정리대상 기관장 명단에 들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개방직 공무원 공모를 거쳐 임용된 그는 임기가 2009년 12월까지인 데다 C등급이었던 기관평가를 B등급으로 올려 놓았고 청렴 추진 최우수기관 표창도 받은 바 있어 문책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직후 국방부가 감사계획을 알려왔다. 전년도에 회계감사를 이미 받았는데 1년도 안 돼 또 감사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때부터 국정원 기무사 국방부 조사단 관계자들이 수시로 방문해 동정과 거취를 챙기기 시작했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미행 감시도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12월 29일 새벽, 감사반원들은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사무실을 뒤져 책상서랍을 뜯고 서류를 압수해갔다. 아내와 여행 가서 찍은 사진까지 가져가 '신원 미상의 여인과 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이라고 소문을 냈다. 감사팀은 서류와 사진을 곧 돌려주었지만 영장 없는 수색에 대해서는 실무자들의 실수라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전임자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관용차 출퇴근을 트집잡아 집중 조사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인 2009년 3월 26일 오후, 국방부 인사담당자가 찾아와 "어제 날짜로 해직되셨다"고 통보했다. 전 날 밤에 열린 긴급 인사위원회는 경영능력 부족, 관용차 출퇴근 등을 문제 삼아 계약해지를 의결했다고 한다. 바로 출입증도 압수 당한 이씨는 직원들에게 고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날 모든 짐을 챙겨 나와야 했다. 임기 9개월을 남긴 시점이었다.
그 직후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그에게 "소송을 준비하신다고 들었는데 아드님이 곧 군대 가신다면서요?"라는 괴전화가 걸려왔다. 상당한 압박감을 느껴 일단 보류했다가 고민 끝에 11월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이미 임기가 만료된 시점이어서 계약해지 무효를 선고하지 않고 잔여기간 임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고법 재판부는 2010년 10월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다만 이씨가 잔여임기에 해당하는 기간 중 3개월 동안 민간기업에 취업해 급여를 받았으므로 이에 대한 보상은 제하고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끈질긴 피고 대한민국은 대법에 상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은 "다시 재판할 이유가 없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종 승소를 통보 받은 게 2012년 3월 15일이니 소송 제기 2년 4개월 만이었다. 대단한 부정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주홍글씨가 그어지는 바람에 이씨는 그 동안 새로운 취업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몇 년 사이 인생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한다. 생각할수록 화병이 도지지만 덕분에 가족들이 똘똘 뭉치게 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그가 철저한 반MB가 된 것이다. MB가 지시한 일은 아니겠지만 욕은 결국 MB가 먹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 국민 개인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소송의 경우 국가기관은 1심에서 지더라도 반드시 2심, 3심까지 소송을 끌어간다. 1심 패배는 곧 그 일에 관한 문책사유일 수 있지만, 대법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그 담당자는 이미 다른 자리에 가 있다.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책임 회피수단이다.
국가기관은 소송을 벌일 자금과 조직과 정보와 법률지식이 있는 반면 국민 개인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공무원들은 국민을 상대로 질 것이 뻔한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소송에 필요한 비용이 마치 자기 돈이나 되는 듯이 함부로 쓰면서 말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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