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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연 연출가 진옥섭 장가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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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연 연출가 진옥섭 장가 가던 날

입력
2012.04.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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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한 번 요란하게 가네. 내로라 하는 소리꾼 춤꾼 악사들이 죄다 하객으로 와서 판놀음을 벌이니 남산이 들썩들썩, 지붕 기왓장도 춤을 출 지경이라. 만장한 500여명 손님들도 흥을 못이겨 어깨춤 우줄우줄, 엉덩이 씰룩씰룩. 얼씨구, 좋다, 잘 한다 하는 추임새가 나중에는 숫제 비명처럼 터지니 신명도 이런 신명이 없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 열린 전통예술 공연 기획ㆍ연출가 진옥섭(48)씨의 혼인 잔치 풍경은 이랬다. 우리 춤과 소리에 미쳐 20년 넘게 숨은 예인들을 찾아 다니고, 그들을 무대에 불러 올려 전통예술의 진멋을 알려온 재주꾼인 그가 이날 늦장가를 갔다. 신부는 재일동포 고연세(41)씨. 일본 정규 학교들의 특별활동인 민족학급에서 재일동포 학생들에게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가르치는 교사다. 둘 다 초혼이다.

‘한국의집’ 희락당 안마당에 차일을 치고 치른 결혼식은 전통혼례로 했다. 날씨는 더없이 화창하고 봄 바람은 싱숭생숭 부는데, 풍물패의 길놀이에 맞춰 북청사자놀음의 사자가 들어와 한바탕 춤을 추어 부정을 가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30분간 전통혼례를 올리고 나서 바로 판이 벌어졌다.

비나리의 이광수, 밀양북춤의 하용부, 채상소고춤의 김운태, 사물놀이패노름마치, 가수 장사익과 록 기타리스트 김광석에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인 민살풀이춤 조갑녀 명인까지 최고의 전통 예인들이 마당에 멍석 깔고 1시간 반 동안 판을 벌였다. 가히 ‘드림팀’ 공연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노름마치’(진씨가 쓴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기도 하다),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들. 진씨와 한 식구처럼 가까운데다 그가 장가 갈 날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터에 반가운 나머지 소리와 춤으로 부조를 자청했다. 특히 전북 남원에서 올라온 조갑녀 명인은 무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는 명무인데, 하얀 저고리 옥색 치마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나와 그 귀한 춤을 보여줬다.

멍석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민살풀이춤으로 조 명인과 쌍벽을 이루는 여든일곱의 장금도 명인과 황해도배연신굿의 김금화 만신도 하객으로 참석했다. 전북 군산에서 올라온 장 명인은 “내가 진 선생 장가 가는 것을 봐야 죽을 수 있는데, 드디어 장가를 가네”라고 기뻐했다.

자신이 기획하고 연출한 무대에서 자주 사회를 봤던 진씨는 이날도 사회를 봤다. 신랑이 자신의 혼인 잔치 사회를 보다니 별 일이다. 설레발과 너스레의 구수한 입담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솜씨는 여전했고, 춤꾼과 대거리를 하면서 신부를 불러내 함께 춤까지 췄다.

판놀음은 장사익의 노래로 마쳤다. ‘봄날은 간다’ 등 여러 곡을 불러주고 덕담을 했다. “옥섭아, 고목도 뿌리 내리면 꽃 피고 열매 맺어. 사랑을 허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네 번만 혀. 하루에 네 번, 알겄지? 어, 근데 오늘 신랑 머리가 이상허네.(평소 세치 때문에 허연 머리를 예쁘게 염색했다). 파뿌리가 검은 머리 되도록 잘 살어.” 신랑 신부와 하객 모두 파안대소하며 잔치가 끝났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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