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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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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입력
2012.04.0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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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청소년 대안학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한다. 책방을 운영하기 전부터 했으니까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많은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1주일에 한 두 번씩 학교에 가서 무엇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무척 풍성해졌다. 나는 책방을 하기 전, 컴퓨터 회사에 다녔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라 그 때문에 나는 꽤 있어 보이는 삶을 산다고 믿었지만 속은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느낄 때 즈음 나는 또다시 무언가 '있어 보이는' 일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봉사활동이었다.

내가 지내 온 청소년기는 무척 암담했다. 공부하고 시험보고 성적표 받고, 그에 따라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던 기억밖에 남은 게 없다. 특히 수학 같은 경우, 오로지 책에 나온 공식만 줄줄 외웠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당연한 것처럼 그것들 모두를 잊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무엇인지, 근의 공식이 무엇인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르고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그 당시에는 두들겨 맞아가면서까지 외웠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이 그랬기 때문인지 몰라도 뭔가 있어 보이는 활동이라고 하면 항상 청소년 대안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그 학교는 보잘것없이 작은 곳이어야 했다. 아무런 철학이나 정체성도 없이 그저 때 되면 돈 주는 큰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나에게는, 그런 생활을 스스로 합리화시킬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했다. 작고 허름한 학교에서 활동을 하면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몇 해 전 친구에게 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나는 그것이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의 책인 것으로 착각하고 찾아보다가 그게 아닌 걸 알고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몇 달 뒤 자주 다니던 헌책방에서 우연히 찾아 읽었다. 그것은 E. F. 슈마허의 책이었다. 슈마허의 책을 읽으면 그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대결을 벌이는 것 같은 긴장감이 든다. 미국은 크다. 경제 규모도 크다. 군사력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말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것을 알고 난 다음 나는 일부러 작은 학교에 찾아가 봉사활동 한 것에 적잖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학교에서 내가 한 일보다도 오히려 얻은 것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하다. 작은 것은 초라하고 힘없는 것, 누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기 때문에 그 안은 더욱 알차고 단단하다. 사람들은 때로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슈마허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들만이 규모를 늘리는 것에 몰두한다. 자연은 무엇이든 커져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세포를 분열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은 작게 나누면서 커지는 법이 없다. 오로지 자기 욕심을 키울 뿐이다. 세력을 키우고 자기편을 늘려서 조직을 크게 만드는 것에 힘을 낭비한다. 그렇게 욕심으로 비대해진 조직은 반드시 어느 부분이 썩어서 터지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무엇이든 큰 것을 좋아한다. 얼마 전 봉사 활동을 하는 학교에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대안학교를 지원해 주고 있는 단체와 학교 사이에 이견이 있어서 사이가 불편해진 것이다. 단체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분들이 작은 학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말을 한 게 발단이 됐다. 물론 대안학교가 커져서 많은 학생들이 이런 교육을 받으면 좋다. 하지만 작은 학교는 그 나름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 큰 학교는 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작은 학교는 작기 때문에 커다란 학교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낼 수 있다.

숲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다 똑같이 커다란 나무 같다면 그 숲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숲은 존재하지 않고, 누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다면 그 숲은 금방 죽은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슈마허가 책을 통해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사람 사는 곳도 모든 크고 작은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평화롭다. 큰 것과 작은 것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사는 게 아름답다. 올해는 중요한 선거를 두 번이나 치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이런 선택이 모여서 아름다운 결과를 만드는, 봄처럼 따뜻한 세상을 상상해본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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