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여름날 솜씨 좋은 형제 차량 절도범이 링컨타운카를 훔친다. 미국 대통령 의전 차량으로 유명한 이 장물의 뒷좌석엔 포대기에 싸인 남자 갓난애가 있다. 아기는 거지 부부에게 팔려갔다가 곧 꽃마차(방석집의 속칭) 주방장인 전직 매춘부 마미에게 맡겨진다. 새 엄마와 꽃마차 '이모'들의 사랑 속에 아이는 출중한 용모와 두뇌, 불현듯 생긴 초능력까지 갖춘 완벽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연모하던 유미 이모의 수상쩍은 실종과 88올림픽 목전에 단행된 사창가 철거를 시작으로 소년의 삶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궤도를 바꿔 폭주한다.
소설가 배지영(37)씨가 완벽하고도 불운한 남자 M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그린 첫 장편소설 <링컨타운카 베이비> (뿔 발행)을 냈다. 배경(80년대 서울 모래내시장)과 인물(소년과 매춘부들) 면에서 그의 중편 '오란씨'와 공통점이 있다. 그의 2006년 등단작이자 재작년 펴낸 첫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링컨타운카에서 태어나 거기서 최후를 맞는 남자의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구상했어요. '오란씨'는 그 과정에서 나온 소품입니다." 링컨타운카>
데뷔작에서 서울 변두리 밑바닥 인생들의 욕망과 광기, 폭력을 밀도 있게 그려 "새로운 리얼리즘의 부활 예고"(소설가 조성기)라는 호평을 들었던 배씨는 그 장편 버전이라 할 만한 이번 소설에서 환상과 해학을 가미한 서사, 부러 과장한 묘사로 이야기에 윤기를 낸다. 화자는 주인공 자신.(배씨는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 중 뭘 택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의 출생부터 서른 즈음까지 3부에 걸쳐 전개되는 이야기 속엔 삼청교육대, KAL기 폭파, 서울올림픽, 윤금이씨 살해, 성수대교ㆍ삼풍백화점 붕괴 등 80, 90년대 대형 사건이 속속 등장한다. 이중엔 단순한 역사적 배경을 넘어, 허구적 사건과 기발하게 엮여 패러디되기도 한다.(실종된 유미 이모가 KAL기 폭파에 긴밀히 연루되는 식이다) 전통적 리얼리즘의 지평에 머물지 않으려는 작가의 방법론적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가의 폭력적 재개발에 밀려 의정부 뺏벌로 흘러간 M은 군무원, 폭력배와 작당해 미군부대 피엑스 물건을 빼돌리고 마약 중개상 노릇을 한다. 마미와 함께 미군 훈련장을 쫓아다니며 매춘을 겸한 밥 장사도 한다. 애써 모은 돈은 그러나 부동산 업자의 사기에 걸려 순식간에 날아가고, M에게 원한을 품은 미군 마약중독자에게 마미는 칼부림을 당한다. 생활 터전을 강남으로 옮긴 후에도 이들 모자를 따라다니던 불행은 결국 마미를 무너진 백화점에 묻어버리고 M에게는 절도범의 누명을 씌운다. 소년원을 나온 M은 우여곡절 끝에 전설의 차량 절도범으로 변신, 인생 막장을 향해 내달린다.
배씨는 "모래내시장 근처에서 보냈던 성장기의 기억이 80년대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는 작품들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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