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수언론 기사들을 보고 수십 년간 "늑대야!"를 외치던 이 목동들이 실제 늑대의 모습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음을 알았다. 통합진보당 내 한 흐름을 '종북'으로 규정한 뒤 야권연대 전체를 먹칠하겠단 의도는 뚜렷했지만, 국가정보원이든 보수언론이든 그게 실제로 뭔지는 모르는 듯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종북에 대해 보수가 별로 위기의식이 없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종북은 적당한 시기에 '보수 총단결'을 부르짖기 위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다 해도 저들 사이에 있다고 대충 우기면 되는 그런 것이다.
오늘날 종북의 숙주로 지목 받는 NL노선도 한때는 변혁이론이었다. 제3세계 민족들이 각자 해방을 추구하는 게 국제적 사회주의 혁명을 도모하는 길이란 취지였다. 한국에 들어와선 친일파 청산 잘한 북한이 민족적ㆍ역사적 정통성을 가진단 식으로 응용됐다. 소련 붕괴 후 PD들은 대부분 혁명노선을 버렸지만 NL들이 그 후 어찌 변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반제국주의' 지도자의 상징이던 카다피가 제 인민의 머리에 폭탄을 투하하다 최후를 맞이한 현실에 대한 그들의 자기반성도 듣기 힘들다. 만일 그들이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기 위해' 실제로 행동한다면 '체제의 적'이 된단 사실도 명백하다. 누군가가 정말로 종북주의자라면 그가 '사상의 자유'를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상황은 난센스다. 그는 '사상의 자유' 따위는 믿지 않지만 적대체제에서의 생존을 위해 그걸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나는 그런 이들이 적어도 몇 명은 있기에 국보법이 존속해야 한다는 보수의 외침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의의 문제로 봐도 개인의 사상의 문제는 최근 불거진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보다 훨씬 덜 위험할뿐더러, 현실적으로도 국보법은 그동안 외려 NL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좌파진영 내에서 NL과 대립한 PD들은 20 년 넘게 그들에게 이념투쟁을 제의했지만 국보법을 핑계로 거절당했다. "3대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어도 답변은 듣지 못한 채 '공안검사의 논리'라 매도당했다. 진보진영이 '종북'을 극복하지 못한 건 자신들의 무능 탓도 있지만 그 존재를 적당히 활용한 보수세력의 정치적 타산 때문이기도 했다. 보수는 '말'이 아니라 '실천'의 차원에선 진보가 정말로 종북과 결별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2001년 이후 민주노동당을 접수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입당한 NL들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국민파와 결탁할 때, 보수언론은 파업을 하지 않는 온건파들의 득세를 환영했다. 그 결과는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NL의 승리와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화로 나타났는데, 그들은 또 그 결과를 만끽하며 진보를 비판했다. 2006년 '일심회 사건'에서 NL은 처벌받은 이들이 조작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라 주장했다. 그건 PD들도 동의하는 바였는데, 그걸 근거로 그들은 민노당 당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겨줬단 사실이 확인된 사람을 그런 행위를 금지한 당규정에 의해 제명하는 것까지 반대했다. 2007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그 때문이었다. 그때 갈라져 나온 사람들 중 일부가 또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비판성명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스러운 이들과 함께 당을 한다.
보수세력이 '햇볕정책이나 복지제도는 종북이 아닌 평화에 대한 신념과 분배에 대한 이념적 요구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종북주의는 진보담론 내에서 근절될 수 없다. 햇볕이나 복지만 말해도 종북이라 비난받던 기억은 진보의 내부논쟁에서 장애물이다. 김대중ㆍ노무현도 친북이라 말하는 사람과 무엇이 친북이냐를 논하는 건 우스꽝스럽고, 덕분에 진보담론 내부의 혁신 논쟁 역시 마녀사냥으로 매도당한다. 북한체제가 남한 독재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했듯 오늘날 종북주의는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보수가 김일성 왕조에 대한 안티테제로 스스로를 정립하는 것을 그만두고 지켜내야 하는 보수적 가치를 스스로 내세울 때, 진보세력도 내부에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암적 흐름을 스스로 드러내고 결별할 수 있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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