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불법사찰 및 증거인물 사건의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전달한 5,000만원이 시중에서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 관봉(官封) 형태의 돈다발(본보 3일자 1면)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자금의 출처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돈다발의 형태로 보면 정상적인 방식으로 마련된 자금이 아니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류 전 관리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이번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들이 '윗선'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장씨에게 잇달아 입막음용으로 건네졌던 자금의 출처 규명은 수사의 성패를 가를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장씨는 지난해 4월 관봉 형태의 돈을 받았던 사실을 또렷이 기억했다. 워낙 특이한 형태라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두기까지 했다. 5만원권 신권이 100장씩 묶인 돈다발 10뭉치가 비닐로 압축 포장돼 있었고, 지폐에 찍힌 일련번호가 순서대로 돼 있었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검찰은 전문 수사관들을 동원해 장씨가 휴대폰에서 삭제한 돈 다발 사진파일을 복원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관봉으로 확인될 경우 유통경로를 압축해 돈의 출처를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씨는 관봉 형태로 받았다는 5,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구권 화폐로 받았지만 전액 현금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장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뒀던 2010년 9월에도 이동걸 고용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이 마련한 4,000만원 중 1,500만원을 변호사 비용으로 전달받았다. 당시에는 5만원권 구권이 100장씩 묶인 8뭉치가 쇼핑백에 들어 있었다. 지난해 8월 이영호 전 비서관으로부터도 5만원권 구권이 100장씩 4뭉치가 담긴 봉투를 받았다.
돈을 받았다는 장씨의 주장에 대해 돈을 건넨 당사자들은 모두 돈을 전달한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출처에 대해서는 모두 밝히길 꺼리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장씨를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금을 전달한 것이며 결코 입막음용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돈을 전달한 시점과 전달 방식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의심하고 있다. 장씨는 지난해 1월 열린 중앙징계위원회에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증거인멸 지시를 받았고 청와대에서 지급한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청와대 연루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이후부터 금품 전달 시도가 잦아졌다. 지난해 4월 장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 복귀가 불가능한 집행유예 선고가 나오자 류 전 관리관이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언급하며 5,000만원을 전달했고, 4개월 후에는 이영호 전 비서관이 2,000만원을 추가로 건넸다. 장씨의 추가 폭로를 우려해 회유 또는 입막음용으로 돈이 전달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계좌이체 대신 현금으로만 전달한 것은 출처를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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