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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 정부 가격지도가 담합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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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 정부 가격지도가 담합 부른다"

입력
2012.04.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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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값 담합의 후폭풍이 거세다. 7년여 걸친 가격담합이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거액 과징금을 물게 된 라면업계는 "가격을 담합한 것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가격지도를 받은 것"이라며 연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에선 "정부의 행정지도를 따랐다가 공정위로부터 담합제재를 받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과도한 가격규제가 오히려 담합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차제에 정부가 먼저 과잉규제 →가격담합→고강도제재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행정규제와 담합은 별개 사안"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 증폭될 전망이다.

계속되는 논란

3일 업계에 따르면 라면 값 사례처럼 '담합이냐 행정지도를 따른 것이냐' 논란은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카르텔국을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가격담합을 적발하면서 계속 제기돼 왔다. 소비자 권익을 추구하는 선진적인 제도(카르텔 규제)와 군사정부 시절부터 정부가 직접적으로 가격 통제를 해 왔던 구시대적 관행의 충돌인 셈이다. 2005년 이후 공정위에 의해 담합으로 적발돼 거액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가 해당기업들이 '정부의 행정지도를 따른 것'이라는 이유로 행정소송을 낸 사례들은 10여건에 육박한다.

9개 소주업체는 2007년 6월~2009년 1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출고가를 인상했고 공정위는 지난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50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소주업체들은 "국세청 행정지도에 따르느라 사실상 가격 결정권이 없다"며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KT와 SK브로드밴드(당시 하나로통신)는 2003~2007년 시내전화요금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당시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는 2003년 시내전화 번호이동제도가 도입된 후 과열 경쟁을 하지 말라는 행정지도를 했고, 하나로통신은 요금을 인상하되 KT는 기존 요금을 유지하고 2007년까지 매년 시장점유율을 1.2%씩을 넘겨주기로 합의한 것. 통신사들은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설탕 가격 담합 역시 행정지도 논란이 일었던 사안. 공정위는 2007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업체가 1991~2005년까지 15년간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했다며 이들 업체에 총 5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CJ 측은 "과거 개발경제 시대 행정지도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90년대까지 설탕 수급안정을 위해 정부의 행정지도가 계속돼왔다"고 항변하며 역시 소송을 냈다.

이번 라면값 담합도 마찬가지.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은 "가격을 올릴 때마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 받은 농심은 현재 국내 최대로펌인 김앤장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정, 행정소송을 준비중이다.

정부, 기업 모두 달라져야

업체들의 반발에도 불구, 소송 결과는 대부분 공정위의 승리로 끝났다. 대법원은 "행정지도 사실은 인정되지만 담합은 담합이며 과징금부과도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렸다.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를 수시로 받는 보험사들의 경우 금리나 보험 요율 담합 등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계속 패소하고 있다.

원고(기업)가 이긴 사례는 소주업체들의 행정소송이 거의 유일하다. 당시 대법원은 "국세청이 소주 제조사에 대해 사전승인적 가격통제를 하는 이상 그 담합은 느슨한 가격담합"이라며 담합자체는 인정하되 과징금 부과는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판결과 관계없이, 구시대적인 정부의 가격통제가 담합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엔 동의하고 있다. 시장에 치열한 경쟁이 없는 독과점상태에서 정부가 행정지도를 통해 가격 인상 상한선을 정해주면 기업들은 굳이 가격을 적게 올려 경쟁을 하기보다는 올릴 수 있는 한 최대한 올리려는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부의 행정지도로 결정된 가격은 업자와의 협상에 의해 나온 것이므로 시장에서 결정되는 '경쟁가격'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행정지도가 결코 물가안정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위평량 박사는 "정부의 행정지도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대신 담합적발시 불이익을 크게 늘리는 식으로 사후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박사는 ▦과징금 액수가 담합을 통해 얻은 이익보다 훨씬 크도록 늘리고 ▦담합을 주도한 회사는 리니언시(자진 고발자 과징금 감면제도)에서 제외하며 ▦미국식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식으로 담합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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