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가 총선 정국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요즘 하야 또는 탄핵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대통령 탄핵을 직접 거론하기도 하고 '정권 탄핵'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현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증거다. 탄핵의 실현 여부를 떠나 이런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 자체를 위정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반대세력의 정치공세라고 항변할수록 문제가 더 꼬이는 형국이다. 세계적으로 정치가들의 탄핵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일도 아니다. 21세기 들어서도 최고 지도자의 탄핵과 관련해 파란을 겪은 나라가 여럿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선 와히드 대통령이 의회와 오랫동안 대립하다 2001년 탄핵을 당한 후 자리에서 쫓겨났다. 건설회사 사장을 거쳐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시장을 지내다 대통령이 됐던 팍사스는 정치자금 문제로 2004년 탄핵을 당해 물러나야 했다. 같은 해에 발생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2005년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은 탄핵의 거센 바람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시장을 역임한 후 대통령에 선출됐던 바세스큐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2007년 탄핵소추를 당해 정직되었다가 국민투표를 통해 복직하였다. 파키스탄의 군 출신 무샤라프 대통령은 대법원장을 해임하고 반대파와 장기간 대립하다 2008년 탄핵되기 직전 사임을 택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또 있다. 2009년에는 한국계 기업 대우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130만ha나 되는 농지를 구입하려다 국민의 반발을 야기해 협상 상대였던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이 권좌에서 몰려난 사건이 발생했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번에 또 탄핵 소추가 이루어진다면 10년도 안 되어 전현직 대통령이 연이어 같은 처지에 놓이는 신기록을 세우게 되는 셈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젊은' 수준을 보여주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흔히 비교된다. 당시 닉슨대통령은 탄핵 직전에 스스로 사임하는 쪽을 택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후 22개월 동안 온갖 거짓말과 발뺌과 은폐공작을 저지르고 나서였다.
미국 역사상 연방 공직자가 하원으로부터 탄핵 당한 것은 모두 16건. 그 중 대통령은 17대 앤드류 존슨과 42대 빌 클리턴, 두 사람이었다. 둘 다 결국은 대통령직을 지킬 수 있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반역죄, 수뢰죄, 중범죄와 경범죄를 저지른 공직자는 의회가 탄핵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특히 중범죄와 경범죄 규정은 대단히 모호하고 폭넓은 해석이 가능해 정치적으로 남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클린턴에게 적용된 혐의는 위증죄와 사법권집행 방해죄였는데 과연 대통령 탄핵으로 갈 만큼 엄청난 범죄였는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할 때' 탄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국 헌법보다 폭이 더 넓다는 느낌이 든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정치 지도자의 탄핵에 있어 일종의 패턴이 발견된다. 우선, 대통령과 의회권력이 따로 선출되어 소위 '이중 정당성의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에 탄핵이 일어나기 쉽다. 둘째, 대통령과 의회 사이에 극심한 대립이 있을 때 탄핵이 일어나곤 한다. 셋째, 국민여론에 동조해 탄핵을 추진할 수도, 여론을 무시하고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정치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혁명적이다. 마지막으로, 탄핵은 민주사회에서 최고지도자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제도적 보루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탄핵이란 말이 원래 라틴어의 '가로막다'에서 유래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이 탄핵 당했을 때 지는 '무모한 (Reckless) 의회'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국회를 비꼰 적이 있다. 민간인 사찰 사건의 경우 '무모한 정권'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현 대통령이 법률적으로 탄핵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미 정치적으로는 탄핵의 길로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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