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3일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령부가 동원됐다고 주장하면서 불법사찰 사건이 다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사건은 비선 라인에 의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탈법 운영이라는 성격을 뛰어넘어,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반대진영을 탄압한 사건으로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근거로 제시한 원충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의 수첩 내용만으로는 의혹 제기 이상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원씨의 수첩은 검찰이 2010년 압수수색에서 확보해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이미 그 내용이 상당 부분 알려진 것들이다. 이 수첩에는 김문식 전 국가시험원장, 박규환 전 소방검정공사 감사,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사찰한 정황이 적혀 있다. 최근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어 원씨가 실제 업무를 하면서 필요한 메모를 했던 수첩임은 분명하다.
민주당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이런 성격의 수첩에 국정원과 기무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정원, 기무사와 공동으로 반정권 세력을 사찰했거나, 적어도 정보 교류는 하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첩에는 '통상보고 지시는 과장'이라는 문구 아래 '내부: 장관까지, 외부: 청와대, 총리실, 검찰청, 국정원'이라고 적혀 있다. 또 'BH, 공직기강, 국정원, 기무사도 같이 함'이라는 문구도 등장한다. 민주당은 'H.P 도청 열람'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도청이나 미행이 자행됐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씨가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앞서 조선대 교수 이메일 해킹 사건에 기무사 간부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정원과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수첩 메모만으로 국정원과 기무사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동원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령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상 업무 범주에 들어가는 군 고위 인사에 대한 동향 및 비위 감시 도중에 기무사의 업무 협조를 받았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같이 함' 메모 바로 밑에는 '연말 장차관 인사'라고 적혀 있어 통상적인 감찰 업무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두 기관으로부터 업무상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대상이 민간인이었다는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수첩에 나온 메모만으로는 사찰 대상이 누구였는지가 특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고위층 동향을 다루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 특성상 국정원이나 기무사 요원과 교류가 잦았을 것이지만 두 기관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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