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던 1일 밤. 농림수산식품부와 대한한돈협회가 2분기 삼겹살 7만톤 무관세(할당관세) 수입 여부를 놓고 벌인 1차 협상을 끝냈다는 소식에 기자는 양측에 전화를 걸었다. 협상 시작 전 한돈협회가 "무관세 수입을 철회하지 않으면 돼지고기 출하를 중단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던 만큼 양측 모두 부정적 반응이었다. 하지만 1시간 뒤 시작된 2차 협상에서 양측은 '무관세 수입 물량 조율'이라는 타협안을 마련했고, 오후 11시40분쯤 "돼지고기 출하 중단을 철회하는 대신 무관세 물량을 2만톤으로 감축한다"는 합의에 성공했다. 소비자 피해 없이 협상이 마무리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양측이 충돌하고 합의하는 과정 속에서 되짚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2분기 삼겹살 7만톤 무관세 수입을 고수해 온 농식품부가 협상과정에서 수입 물량을 절반 이상 깎아 "정부가 상인들 에누리처럼 협상 전에 수입량을 부풀린 것이냐"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국책 연구기관과 양돈업계, 유통업체의 수급 전망이 제각기 달라 물량을 충분히 잡을 수 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농식품부가 정확한 수급 예측 없이 할당관세 적용 물량 설정했다는 의미로 정책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다.
게다가 청와대의 "물가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에 눌린 탓인지, 농식품부는 충분한 검토 없이 '돼지고기 무관세 수입' 카드를 꺼내 들어 망신을 자초했다. 정부의 수급관리 실패 탓에 치솟은 돼지고기 가격에 대한 책임을 국내 양돈업계에 전가하려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과정에서 농식품부는 이례적으로 국내 양돈업계 생산비를 추산해 공개하며 양돈업계의 반발을 억누르려 했으나, 양돈업계의 반론에 설득력 있는 해명을 하지 못해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어설픈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번 삼겹살 협상으로 이익단체가 실력행사에 나서면 정책이 변경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은 공익을 지향하는 만큼 늘 이해관계자와 이익단체의 반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마저 설복시킬 수 있는 세련된 정책 추진이 필수적이다.
현재 정부의 압력에 눌려 공공요금과 생필품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많은데, 향후 이들이 양돈농가처럼 실력행사에 나선다면 정부의 대응력은 그만큼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어설프게 돼지고기 물가를 잡으려다 망신살만 산 물가정책을 정부가 곰곰이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배성재 사회부 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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