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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 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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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 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2>

입력
2012.04.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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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첩 월선이가 색주가를 차렸다니 성내 아전들이나 장사치들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천자문에 소학권도 떼었고 언문도 쓰고 읽을 줄 알았고, 드나드는 광대패나 풍각쟁이들에게서 잡가에 음률도 익혔다. 관아에 비장질 다니는 이가 우리 집 단골로 엄마와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술 한잔 먹고 내가 앞치마 두르고 술청을 왕래하는 걸 보더니 은근히 말을 꺼냈다.

연옥이가 이미 이팔이 코앞인데, 여기서 술청 심부름이나 시키고 사내들 희롱이나 받게 할 건가?

그러니 낸들 어쩌겠소? 저것이 내 속으로 낳은 천출이기는 하오만, 그래도 지 애비는 양반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오.

매파를 놓아 어디 부잣집 후취 자리나, 아니면 교방에 넣어 큰 기생으로 키워보는 건 또한 어떠한가?

엄마는 곰방대 물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곧 동짓달인데 어디 좋은 자리 있걸랑 소개나 해주소. 내 차마 지 애비 낯을 보아서라도 나처럼 기적에 올릴 수는 없지요.

그들이 무슨 꿍꿍이수작을 나눴는지 나는 알 턱이 없었다. 싸락눈이 쌀랑대던 어느 날 오후에 손님이 들어섰다. 그맘때쯤에는 아직 퇴청 시각도 아니고 술밥 때도 이른 시각이어서 손님 맞을 준비나 하던 때였다. 더구나 우리네는 목로나 주막이 아니라서 예정 없이 들이닥치는 낯선 손님은 시큰둥하게 맞이하게 마련이었다. 세 사람이었는데 둘은 두루마기 차림에다 각기 테 좁은 갓과 삿갓을 썼고, 하나는 행전 치고 덧저고리 걸치고 패랭이 쓴 보부상 따위의 행색이었다. 앞서 들어서던 패랭이 쓴 사내가 술청 마루에서 내다보는 내게 물었다.

방 있냐?

나는 속으로 느이들에게 내줄 방이 어디 있겠냐 싶어서 픽, 하는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공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아직 장사 때가 아니오니 저 건너 주막으로 가보시지요.

패랭이가 얼른 눈치를 채고는 처마 아래 들어서서 어깨의 눈을 툭툭 털면서 뒷전의 일행에게 말했다.

우리더러 뜨뜻한 놈들이라구 이러는 겔세.

거 뭔 소리여?

시원찮은 놈들이다 그 소리지.

패랭이가 명랑하게 곁말을 날리자 둘은 픽픽 웃어댔다. 신을 벗더니 패랭이 쓴 이가 마루로 올라서며 내게 말했다.

이 골 수리 어른이 여기서 만나자구 하더라.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전주 감영 이방이라면 전체 군현의 아전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 격이라 우리 집에도 몇 번 들를까 말까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와도 잘 알아서 이쪽은 늘 투정이요 그쪽은 점잖게 술값을 두둑이 주고 가는 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찍짹 소리 없이 그들을 상방으로 안내했다. 그 집에서 상방이란 겉으로는 대청마루에 붙은 건넌방이 되겠지만 으슥하고 잡인 피하기로는 그 뒷방이 되는 셈이었다. 뒷방은 마루에 오르지 않고 집 오른쪽을 돌아서 북향에 붙은 방으로 툇마루가 달렸고 방은 길게 상하 방으로 나뉘었다. 아랫방에 술상을 보고 윗방에서 춤추고 풍악을 울리기가 그럴듯했다. 방은 초저녁에 불을 넣어 이제 온기가 퍼져가는 중이었다. 패랭이가 먼저 앉으면서 궁둥이 밑에 손을 찔러보며 한마디 했다.

어째 방바닥이 헐벗은 각설이 부랄 같네.

수작으로 보아 방이 차다는 불평이겠다. 괜히 부끄럼 타면 누구 좋은 일 시키랴 하고 시치미 딱 떼고 얌전하게 대꾸했다.

불을 넣었으니 곧 따뜻해질 거예요.

갓 쓴 이가 대꾸했다.

아궁이를 쑤셨으니 이제 열이 나겠군.

이 사람, 아이 듣는 데서 무슨 패설이여?

삿갓 쓴 이가 짐짓 핀잔을 주는 척했고 나도 들은 말이 있어서 한마디 했다.

오늘 술상은 좀 늦게 나오겠네요.

초벌 안주는 찬 것부터 나올 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

팔삭둥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에미두 한숨 쉬어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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