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부근 대형오피스텔과 백화점 빌딩숲 사이에 6층짜리 작은 백화점이 있다. 매장 내부도 영 딴 세상이다. 그 흔한 명품 매장 하나 없고 대부분 낯선 브랜드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전용백화점 '행복한세상'. 1999년 12월 설립 당시에는 입지가 괜찮았다. 목동에는 아파트가 많은데 이렇다 할 백화점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지금 이곳은 '유통 공룡'들의 가장 뜨거운 격전지다. 2002년 바로 옆에 현대백화점이 오픈 했고, 2009년에는 영등포 경방타임스퀘어, 작년에는 신도림 디큐브시티, 김포공항 롯데몰 등 대형유통시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졸지에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수익이 꽤 쏠쏠하다. 2006년 이후 5년 간 흑자경영을 이어오며 연평균 5.7%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작년 매출액은 약 738억원이고 상가까지 합하면 1,200억원에 달한다. 주변 대형백화점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지만 '핸디캡'을 감안해야 한다. 일반 백화점들이 평균 30~40% 수준의 마진을 챙기지만 행복한세상은 평균 20% 수준. 게다가 매장의 96%가 중소기업제품이다.
사실 회사측도 이 정도 성적을 낼 줄은 몰랐다. 행복한세상은 중소기업진흥공단 산하 중소기업유통센터 소속이다. 기타공공기관에 속해 정부 지원이 거의 없고, 매장 운영에 대한 제약도 없다. 때문에 한때 수익성이 보장된 명품 브랜드를 들여와 수익을 내려고도 했다. 하지만 취지에도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미지 때문에 명품 브랜드들도 입점을 꺼려했다.
결국 정공법을 택했다. 어차피 안될 바에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제품으로 승부를 걸기로 한 것. 레드페이스, 에크로바 등 30년 역사의 실속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발굴하고, 구두나 여성복 영세업체들을 모아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입점시키는 식이었다. 한경희생활과학이나 NUC전자 등 이곳을 거쳐 나름 유명해진 회사도 생겼다.
중산층이 많은 목동의 특성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윤재복 중소기업유통센터 기획조정팀장은 "목동은 교육 때문에 무리를 해서 이사온 부모들이 많은데 아이들 옷은 대형백화점에서 사고 자신들 옷은 우리 매장에서 구입하더라"고 말했다.
올 들어서는 더 눈을 낮추기로 했다. 중소기업 판로 확대라는 공적기능을 더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백화점 4층에 창업기업이나 벤처기업 사회적기업 등을 위한 '히트500'매장을 개설했다. 현재 476개 업체가 들어왔고, 9월에는 4층 매장을 모두 히트500으로 채울 예정. 윤 팀장은 "영세한 회사들의 사정을 감안해 판매사원을 우리가 직접 채용했다"며 "이 비용을 감안하면 백화점의 4층은 사실상 '노마진' 매장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손창록 중소기업유통센터 대표는 "5년 연속 흑자를 낸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소기업들의 인큐베이터라는 본연의 역할에 더 충실하자는 취지"라며 "초기기업들의 아이디어 상품들의 마케팅을 강화해 소비자와 중소기업 모두에게 이롭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