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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유니폼 입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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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유니폼 입은 정치인

입력
2012.04.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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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 자유가 제약되거나 부정당하면 이를 옳지 않다고 여기고 저항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권리가 때로 제한되는 상황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동차를 운전해서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자유야 누구에게나 있지만,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꼼짝없이 유니폼을 입은 주차 요원의 지시에 얌전하게 따르게 된다. 나는 그를 모르고 그도 나를 모르지만 어떠한 의심도 없이 그의 통제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 기적 같은 놀라운 일은 우리가 차량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대형 마트 주차 요원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각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주차 위치를 정하는 것보다 주차의 권리를 한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다. 물론 그 권리 위임의 조건은, 그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공적인 이익에 성실하게 복무하겠다는 결의이다.

이때 그가 착용하는 유니폼은 권리를 위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명징한 상징이다. 그러니까 결코 자의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는 것,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그 유니폼에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흰 티셔츠와 청바지 보다는 유니폼이 고객 통제에 훨씬 유리한 이유는, 유니폼이 통제의 권리 위임에 대한 명징한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유니폼은 지시와 명령의 상징이지만 그것은 또한 서비스와 복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곧 선거를 치른다. 우리의 한 표 한 표로 국회의원을 뽑는다. 중요도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주차 요원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즉 선거는 우리가 스스로의 편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제한하고 그 권리를 위임할 일꾼들을 선택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모두 생업에 바빠서 올바른 법률을 제정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으니,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다. 그들의 그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역시 이렇게 권리의 위임이 문제가 되니, 대형 마트의 주차 요원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입후보자들도 모두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우리에게서 권한을 위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그리고 초록색에 이르기까지 온갖 화려한 색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누비고 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거리로 나와 고개 숙여 인사하니, 평소 국민의 권리를 위해 지하에서 비밀리에 암약하던 인사들이 이리도 많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잠깐 흐뭇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틀림없이 유니폼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저 일사분란한 봄 색깔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검은 정장들의 행렬 속으로 돌아가고, 거리에서 춤추던 원색의 잔치들은 검은 대형 승용차 안으로 복귀하면서 의원들은 우리 눈 앞에서 또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회의원들이 4년의 임기 내내 소속 정당의 자랑스러운 유니폼을 입고 다녔으면 하는 소망을 여기에 적는다. 그들의 유니폼은, 자신들이 권리를 위임 받았을 뿐이라는 것, 그 권리는 주권자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국민의 뜻에 기꺼이 복종한다면, 지하 주차장의 저 성실한 주차 요원들에게 하듯이 나 또한 그들의 왼쪽 오른쪽 수신호에 즐거이 복종하겠다. 복장에 대한 이 정도의 제안은 땀 흘려 번 돈으로 그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선거 전에는 그들의 명함을 우리가 받기 싫어하고 선거 후에는 우리의 명함을 그들이 받기 싫어하는 이 부조리한 순환을 끊고 싶다.

물론 우리가 이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유니폼의 색깔이다. 어떤 색의 유니폼을 고를 것인가,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며칠 남지 않았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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