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총선 야권연대 멘토단이란 게 떴다. 야권 단일후보를 적극 지지, 홍보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멘토는 조국 공지영 이은미 이창동 김여진 정혜신 유홍준 박제동 권해효 정지영 김용택 정연주. 모두 나름대로 유명인사이니 일일이 직함을 붙일 건 없겠다.
민주통합당은 "정권 심판에 힘을 모아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언론은 멘토들의 대중성을 이용해 2030 세대와 무당파 부동층을 잡으려는 전략으로 보았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보살폈다는 현인, 멘토(Mentor)가 선거판 싸움의 상징 또는 기호가 된 게 야릇하다.
어쨌든 자칭 멘토단에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다. 선거 멘토에 앞서 청년 멘토 노릇에 열심이던 조국 교수가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의 선거법 위반 시비에 앞장선 게 자꾸 거슬렸다. 그는 손수조가 '전세금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 공약을 깬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트위터에서 주장했다. 그 바닥에 영향력 있는 법학자의 주장은 분별없는 인터넷 공간을 시끄럽게 했다.
손수조의 해명은 어설프고 구차했다. 진보 언론 등 적대 세력은 신바람이 났다. 박근혜 위원장과의 카퍼레이드 위법 주장까지 새삼 꺼내 들고 마구 떠들었다. 게다가 손수조는 신고하지 않은 대량 문자 메시지로 선관위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손수조가 경솔하고 어설픈 것과, 법학자 조국이 함부로 선거법 위반을 외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선거 뽀개기'는 듣기 불편했지만, 그 약속을 깬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훨씬 황당했다. 애초 제 신명에 겨운 다짐을 어긴다고 허위사실 공표가 될 리 없다. 법정 선거비용 한도를 넘지 않는 한 불법일 수 없다. 더구나 회계 보고는 아직 멀었다.
"한 푼 안 쓰고 맨발로 뛰겠다"고 공약한들 달라지겠는가. 유권자의 머슴이 되겠다거나, 온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허망한 공약을 떠들어도 허위사실 공표를 논할 게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사리를 모를 리 없는 악의적 선동은 선관위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선거법 위반을 묵인한다는 비난에 결국 선관위가 나섰다.
선관위는 허위사실 공표죄의 '사실의 공표'는 '의견 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진술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장래의 사실에 관한 선거비용 공약은 법리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할 여지가 없다고 판정했다. 대법원 판례로 정립된 개념이다.
카퍼레이드 논란도 "선루프 차량에 동승, 환영 군중에 손을 흔들고 인사하며 100m 가량 카퍼레이드를 한 것은 통상적 정당 활동이거나 의례적 행위여서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차량 홍보 선전물이나 특정인 지지 호소가 없었던 사실과 함께 역시 대법 판례를 제시했다.
여전히 아리송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가나 연예인도 아닌 법학자가 대법관이 수장인 선관위 판정은 아랑곳없이 황당한 주장을 되뇌는 것은 딱하다. 그렇게 법을 가르치나 싶다. 전세방 이중계약 의혹 등을 마구잡이로 떠들어 유권자를 현혹하는 모습은 참된 멘토는커녕 선거판 선동꾼을 닮았다.
정권 심판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눙칠지 모른다. 그게 아무리 절실한 목표일지라도 사악한 방법으로 세상을 올바로 바꿀 수 있을까. 청년들에게 거짓된 논리와 맹목적 싸움을 가르치면서 사회와 정치가 진보하기를 기대한다면 우습다. 진정으로 그걸 바란다면 선거 멘토 노릇부터 참되고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기껏 손수조를 악의와 거짓으로 짓밟는 것은 비열하다.
여야와 멘토단이 유난히 힘 쏟는 부산 선거판 싸움을 자꾸 논평하기 꺼림하다. 그러나 출렁거리는 여론의 파도를 타고 노는 이들은 바다는 늘 위험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까불거리는 배를 언제 거센 파도가 뒤집고 집어삼킬 지 모른다. 대중과 민심도 바다처럼 변덕스럽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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