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총선이 8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막판 돌출 변수로 작용하면서 현 정권에 대한 심판, 미래 정권에 대한 기대, 각 당의 공약과 후보 개개인의 자질에 대한 평가 등이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작년 10월 말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지난 5개월을 되돌아보자.
시작은 정당정치의 위기와 시민정치의 부상이었다. 시민단체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고 정치권 외부 인사의 돌풍이 불면서 시작된 위기 상황은 정당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았고 양당 모두 대오각성과 환골탈태를 공언한 바 있다. 정치권의 국민참여경선제 도입 논의와 함께 민주통합당은 일반 시민들의 모바일 경선을 통한 당지도부 선출 등 시민정치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양당의 당명이 바뀐 것 외에 과연 무엇이 근본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 없다. 공천 과정에서 검증 부실과 새 인물 부재, 돌려 막기와 낙하산 공천, 계파 이기주의와 캠프 공천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왔으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색깔론, 말꼬리 잡기 등 전형적인 네거티브 캠페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 불신의 원인이 되었던 정당과 국민 간의 공감 및 일체감 결여, 정당의 사익 추구, 정당 간 극단적 투쟁 등 기존 정당정치의 악습과 폐해는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공천 과정에서 상향식 공천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바일 경선의 불법 논란과 여론조사 경선의 조작 시비 등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근본적인 취지를 져버리고 국민참여경선 제도 자체를 폐기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부작용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가면서 그 근본 취지를 살리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가령 모바일 선거인단을 확대하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양당이 동시에 경선을 치르는 오픈 프라이머리로 바꾸며, 일반시민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공론조사'를 활용한 시민공천배심원제도를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보완책과 대안을 고려할 수 있다. 사실 이번에 문제가 생긴 건 국민경선 제도 자체보다는 사전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며 양당이 주로 활용한 공천심사위원회 방식은 비록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모양새는 갖추었지만 사실상 하향식 밀실공천에 대한 눈가림에 불과했다.
의석수를 300석으로 늘리고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조정한 것 외에는 제대로 한 일이 없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선거구획정위원회도 19대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손볼 부분이다. 여기서도 정치개혁과 선거구 획정을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 맡겨서는 안 되며, 그 권한을 국민과 전문가들에게 이양하고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경우 국회에서 독립시켜 상설 의결기구화하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온타리오주에서 시도한 적이 있는 시민총회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도 하나의 아이디어다.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총회가 정개특위를 대신하여 개혁안을 심의하고 이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안이다.
여하튼 '시민정치'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4ㆍ11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현재 어느 정당에도 지지를 보내고 있지 않는 부동층이 30%를 넘나들고 있으며 2040세대의 부동층 비율은 45.7%에 이르고 있다. 최근 서울대 대학신문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생 10명 중 7명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7대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 조사(32.9%) 때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정당에 대한 기대는 버렸을지 모르지만 정치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공천권자(selectorate)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면 이제 유권자(electorate)로서의 권리를 찾아나서야 할 때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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