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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 로 2만 관객 모은 정재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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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 로 2만 관객 모은 정재은 감독

입력
2012.04.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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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기용(1945~2011)씨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는 "당초 목표치가 1만명이었던" 영화다. 서울영상위원회 지원금 1,500만원으로 제작의 날개를 단 저예산영화이고, 다큐멘터리는 흔히 비주류로 취급 받는 극장 환경을 감안하면 1만명도 '꿈의 숫자'였다. 하지만 1일까지 이 영화를 찾은 관객은 1만9,901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뭇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이 지상 목표로 삼는 관객 수의 갑절에 해당하는 성과를 올렸다. 떠들썩한 흥행 행진과 요란한 매진 사례는 아니더라도 '말하는 건축가'의 성공이 영화계에 던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말하는 건축가'의 지휘자는 정재은 감독이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정기용 선생님의 넓은 인지도가 흥행의 큰 요인"이라며 공을 돌렸다.

'말하는 건축가'는 기적의 도서관 등을 만들어 국내 공공건축의 대가로 인정 받은 정씨의 삶 막바지를 화면에 담고 있다. 생애 마지막 건축전을 준비하는 정씨의 모습을 줄기로 국내 건축문화에 대한 정씨의 비판 의식 등이 잎을 틔운다. 사람과 역사를 품는 건축을 지향하면서 자신의 집은 한번도 짓지 않은 정씨의 인간적인 풍모가 안온하게 전달된다. 승효상, 유걸씨 등 국내 유명 건축가의 정씨에 대한 평가도 곁들여져 흥미롭다.

"유명 건축을 보기 위해 해외 여행을 하는" 정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계기는 국내 건축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시장이나 고궁을 찾는데 한국의 건축가는 누가 있고 어느 건축물이 있는지" 하는 궁금함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2009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소개 영상 연출 등으로 건축가들과 교류하면서 건축 다큐멘터리 연출을 마음 먹게 됐다.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썼는데 투자도 못 받고 평상시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것이죠. 영화를 준비하며 정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제가 익히 알던 건축물의 주인공이더군요."

한 음식점에서 촬영 제의를 하자 정씨는 바로 웃으며 "오케이"라 응했다. "건축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를 풀고 건축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정 감독은 되돌아봤다.

"다큐멘터리는 찍으면 그저 찍는 거지, 하며 아무 욕심 없이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과정은 지난했다. 장비 섭외와 운전 등 "연출부와 제작부가 할 일 모두를 혼자 처리"해야만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조달과 편집. "기존 상업영화 감독이 한다면 기대들을 가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딴판이었다. "지원 공모에 넣었다 하면 다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에야 사람들이 이야기 해주더군요. '영화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선입견이 작용했다고."

"다시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로" 편집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2009년 말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씨를 따라다니며 찍은 400시간 분량을 95분으로 압축하는데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정 감독은 당초 근사한 건축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으나 암에 시달리던 정씨의 병색이 짙어지면서 영화는 정씨의 건축전 준비로 포커스를 맞춰가게 됐다. 그는 "촬영을 하면서 점점 욕심을 버리게 되고 그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여유가 없어 제가 큰 그림을 못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 등과 마지막 봄나들이에 나선 정씨를 급하게 아이폰으로 촬영해 영화 속에 담았다. 정 감독은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제목은 정 감독이 고심 끝에 지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말인데 정 선생님은 그런 말을 많이 하고 싶은 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남 오피스빌딩과 궁궐을 배경으로 한 상업영화 두 편을 준비 중인 정 감독은 '말하는 건축가2'를 지금 촬영하고 있다. 재건축 중인 서울시청사가 주인공이고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 모습을 갖춰가는 시청사의 모습이 괜찮으면서도 낯설게 다가왔어요. 시민들의 시선도 비슷할 거예요.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시청사에 대해 통찰하고 싶어요. 시청사는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고 시민의 공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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